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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사 안은영(특별판)(양장본 HardCover) 작가 정세랑 출판 민음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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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에 보건교사 안은영이 티비 시리즈로 나오기 전에 책을 먼저 읽었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것과 드라마의 느낌은 사뭇 달랐지만, 결국은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다.

    주인공 안은영은 어릴 때부터 귀신-젤리가 보였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은영은 젤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남모르게 도와왔다. 정작 도움 받은 사람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도 말이다. 말하자면 은영은 타의적 영웅이었다.

    그러면 영웅은 누가 구하는데? 영웅도 영웅 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 근데 자기밖에 못하니까 억지로 하고 있는 거면?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면서 내내 저런 생각이 들었다. 영웅을 구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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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앗 저도 이 소설 맛있는 음식 먹듯이 호로록 해치워버렸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리뷰로 또 보게 되니 반가워요~ 보건교사 안은영은 확신의 히어로물이 분명합니다.ㅎㅎㅎ\' 영웅은 누가 구하는데? 영웅도 영웅 하기 싫을 수도 있잖아\'! 라는 글쓴이분의 생각이 왠지 정세랑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처럼 귀여워서 왠지 웃음이 지어지네요^^ 그러게요.. 영웅을 구하는 것은 누굴까요? 저는 은영을 구한 것은 은영에게 힘이 되어준 주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쓴이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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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신박한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국 보지는 못했습니다. 유튜브 광고 영상에서 젤리같은게 튀어 다니고 개구진 노래가 나와서 도대체 무슨 장르인가 싶었는데 ‘영웅은 누가 구하는가?’와 같은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드라마와 느낌이 좀 다르더랃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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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에 비가 내리면 작가 박신아 출판 선우미디어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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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마주쳐서 읽게 된 책이다. 마침 내가 그때 캘리포니아 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날씨가 좋아서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었는데, 제목은 '캘리포니아에 비가 내리면'이라니 궁금증이 일었다.

    책은 지극히 한국스럽게 시작한다. 그것도 옛날 한국. 요즘 어린 친구들은 '솜 탑니다'라는 표현을 아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은 미국에 이민을 갔던 주인공의 자전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경계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누군가는 청소년기를 가리킬 때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누군가는 문화적 경계에 있는 이를 가리킬 때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이미 한국에서 보냈고 영어보다 한국어가 훨씬 편하지만 이미 미국의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처럼 편안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한국이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바뀐 모습이 낯선 것이다.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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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 단편집 작가 프란츠 카프카 출판 범우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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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 단편집 중 <황제의 전갈>이라는 짧디 짧은 글이 있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2장 남짓이다. 나는 그 짧은 글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었는데, 왜 내가 글을 읽고 이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슨 감정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황제가 일개 개인인 '나'에게 죽기 전 보내온 전갈.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길래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확인하고 죽기 직전 온 힘을 다해 사자를 보냈을까. 비천한 신하, 황제의 태양 앞에서 가장 머나먼 곳으로 피한 보잘것없는 그림자에게, 바로 그런 '나'에게 황제가 임종의 자리에서 한 가지 전갈을 보냈다. 그 내용을 아는 사람 중 살아있는 자는 사자뿐이다. 사자는 가장 깊은 내궁의 방들을 힘겹게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고, 뜰을 지나고, 제2의 궁전을 지나 나의 문으로 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궁의 방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설령 그 방들을 벗어난다 해도 아무런 득이 없을 것일진대, 이는 그가 내궁의 방을 벗어난다 하더라도 뜰을 헤쳐나가지 못할 것이며 왕도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이 거대하고 위대한 궁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황제가 죽기 직전이 아닌 생명력이 충만했던 시절로 시계를 돌려보면, 태초에 태양과 그림자가 서로 즐거이 뛰어놀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그림자가 태양을 등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림자는 태양이 지배하는 제국의 왕도에서 쫓겨나 가장 구석진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태양이 지는 때가 왔다. 그는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림자에게 말을 전한다. 사자를 통하여. 태양과 그림자, 빛과 어둠은 삶과 죽음 만큼이나 '양분'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들의 사이에는 제3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태양의 세계에 살던 사자는 그림자의 집에 도달할 수 없다. 황제의 전갈은 영영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의 전갈은 무엇이었을까? 곧 태양이 질 테니 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내용이었을까? 혹은 태양이 없으면 그림자도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황제의 죽음과 '나'의 생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태양이 죽어도 계속해서 살아있다. 둘은 한 몸이지만 한 몸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들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자도 도달하지 못하는 '나'의 문인데, 어째서 '나'는 황제가 죽었다는 것을, 심지어는 황제의 전갈이 본인에게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사실 태양과 그림자는 '양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는 침전물이 높다랗게 퇴적된 왕도가 놓여있다. 하지만 태초에 그 둘은 하나였으므로 사자 따위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다. 너무 오래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을 뿐. 그러니까, 애초부터 황제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이뤄지지도 않을 희망을 품고 사자를 기다리는 것일까? 어째서 다른 것이 오고야 말리라 믿는 것일까?

    왜냐하면 희망은 본디 허상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그 어떤 유형의 것도 아니고, 언어의 형태로 전승되는 것도 아니다. 희망은 그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는 상태 그 자체다. 그러므로 황제가 우리에게 보낸 결코 닿지 않는 전갈은 희망이다. 태양의 마지막 유언 한 마디는 사자를 끝없이 달려나가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림자가 매일 저녁 창가에 앉아 촛불을 켜둔 채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한 몸이던 태양이 죽고 나서도 그림자가 영영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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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탉과 독재자(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77)(양장본 HardCover) 작가 카르멘 애그라 디디 출판 길벗어린이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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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티가 독서 활동 때 읽고 싶다고 가져온 책이다. 동화책에 독재자라는 표현이 나온 것은 처음 봐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가 쿠바 난민 출신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키워드를 어떻게 하면 아이들도 재밌게 동화책으로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묻어나는 내용이었다.

    yes24의 책 소개에 따르면, ‘예리한 통찰과 유쾌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용감한 수탉 가이토의 노래할 자유를 향한 짜릿한 투쟁기!’라고 되어 있다. 정말 잘 요약한 한 줄 평이라 빌려왔다. 동화책에는 “노래하는 자가 있는 한 노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명대사가 나온다. 원래 가이토가 살던 마을은 노랫소리로 가득했지만,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원래 있던 시장을 내쫓고 조용한 마을을 만들고자 했던 페페를 새로운 시장으로 세운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감이 온다. 노래는 자유이고,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부작용들-현실에서는 가짜뉴스가 있을 수 있겠다-이 일어나 강한 통제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페페는 아예 노래를 금지하며 가이토를 철창에 가두기까지 한다. 아주 팽팽한 힘겨루기였다.

    글을 다 읽고 나서 멘티에게 무슨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보니 수탉이 멋있다고 했다. 동화책 속에 숨겨진 의미를 다 알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자유와 책임에 대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기 좋은 동화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덕과 수업에서 이야기 모형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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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틸다(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작가 로알드 달 출판 시공주니어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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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소녀가 어른을 골려주는 이야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마틸다는 그것을 해낸다. 번뜩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마틸다 웜우드는 책에 빠져 사는 매우 명석한 아이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마틸다는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혼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위대한 명작을 접하고, 세계를 여행했다. 물론 글은 혼자 익혔다. 보통의 부모들은 아기가 옹알이만 해도 ‘우리 딸, 천재 아니야?’ 했겠지만 웜부드 씨네 부부는 아기는 밥을 축내는 존재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틸다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몇십의 곱을 암산으로 해버리는 천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명석한 아이가 잘못된 부모 밑에서 크면 어떻게 될까? 마틸다는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부모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모자에 접착제 바르기! 발모제에 염색약 섞어놓기!

    책을 좋아하는 어린 소녀가 마틸다를 읽고 사랑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평소에 ‘어른들은 대체 왜 저러고 산담?’하는 의문을 품었던 어린이라면 특히나. 마틸다의 과감한 아이디어를 읽고 있으면 나도 어른들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지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로알드 달의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어린이에게도 각자의 생각이 있고, 스스로 결정해 행동하는 주체성이 잘 드러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책에서 어린이는 약자지만 오히려 그래서 어른들의 의심을 피한다. 위험하고 장난스럽고 유쾌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린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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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만 보아도 참 흥미로워 보이는 책 같습니다. 최근에는 성인 수준의 도서도 좋지만 가볍게 읽으면 좋을 아동.청소년 도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아닌 성인의 시선으로 보면 무언가 새롭게 배울 것이 있을 때도 있더라고요.
    •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소설을 추천해주시다니 반갑네요!! 책을 사랑하는 천재소녀의 이야기, 참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으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 작품을 접해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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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 정말 좋아하던 소설이에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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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 작가 제시카 팬 출판 부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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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길 한복판에서 ‘영국에 여왕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당황스럽다는 반응? 혹은 의심의 눈초리? 이 책의 저자가 겪은 반응은 이랬다.

    “당연하죠. 빅토리아 여왕이잖아요.”

    ‘음, 그렇군.’ 하고 넘긴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사 상식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빅토리아 여왕이라니! 물론 이 책이 쓰였을 때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직 살아있을 때이다. 저자는 이 질문을 여러 번 던졌고, 무려 ‘빅토리아 여왕’이라고 답하는 남성을 둘이나 만났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국 시민들의 대답이 아니고,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는가이다.

    주인공은 대단한 내향형 인간이다. 나도 한 내향하지만 이 책의 저자 앞에서는 새발의 피였다. 주인공은 평생을 내향형 인간으로 살아왔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겁을 낸 나머지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이주 와 친구도 없이 집에서만 지내다보면 누구라고 그럴 것이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딱 1년 동안 외향형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을 담은 책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법, 청중들 앞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법 등을 가감없이, 쓰라른 실패부터 자그마한 성과까지 솔직하게 쓰인 글을 읽다보면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 못할 게 뭐가 있어?’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무엇이든 해보고 도전하고 싶어진다. 너무 소심해서 많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진 않았을까 걱정해본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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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같은 내향형 인간들은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는 것도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ㅎㅎ 여러 번의 도전이 있어야 성공의 기회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을 아는데, 그걸 실천하는 법은 어렵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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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향적인 성격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 나름의 장점이, 그들이 있기에 이 사회는 다양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지침서가 되어줄 것 같네요!!
    • 내향인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을 동경하는 사람으로서 외향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경험은 신선하네요. 만약 내향적인 성격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만난다면 이 책을 추천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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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전집 작가 기형도 출판 문학과지성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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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포도밭 묘지 1>이라는 시에서였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 온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다. 정말로 사무치게 외로운 느낌이 든다. 기형도 시인은 향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무엇이 그렇게 외롭고 슬펐을까 그의 삶의 무게와 깊이를 가늠해보게 된다. <대학시절>이라는 시의 내용을 읽으며 당시의 시대와 그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인의 생각과 삶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의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에 동지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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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이름을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기형도의 작품을 읽으며 이름을 익힌 작가입니다. 제가 몇 알지 못하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기형도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쓸쓸함이 그의 작품에 더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기형도 작가의 \'정류장에서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데, \'멈춤\'의 의의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다른 기형도의 작품도 한 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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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별의 능력(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작가 김행숙 출판 문학과지성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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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처음으로 시의 매력을 알려준 시인이다. 그동안 시를 읽으면서 진짜로 마음에 와닿은 적은 없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사람들이 시를 읽는구나 생각했다. 가장 처음 접한 시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였다.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푸르스름한 침낭 속에서 아아아, 기지개를 켜며 필라멘트처럼 눈을 깜박였다. 박사님, 박사님, 물결을 일으켜줘요. 내게 감동을 불러일으켜줘요.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박사님은 굿모닝. 내게 또 오늘 하루를 기념하며 뽀뽀를 해주죠. 오늘은 18세기 초, 내일은 21세기 말이래요.

    나의 사랑은 자살을 선언한 사이보그. 그의 숭고한 정신을 사모하기 위해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흰쥐들은 나날이 무섭게 살이 찌는데요. 박사님, 박사님, 내일쯤엔 흰쥐들이 우리의 마차를 끌 수 있을까요?

    오늘은 18세기 초, 나의 거대한 사랑은 더러운 망토를 펄럭이며 저토록 고독하게 걸어가요. 내일은 21세기 말, 우리들의 결혼식이 있어요.

    박사님, 박사님, 실험실 밖에서는 아무도 실험을 하지 않나요?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나서, 첫울음 대신 첫사랑 나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님은 굿바이, 굿바이, 나의 미래를 축복해주시겠죠.

    나는 아직 작은 가슴이지만은요, 쿵, 하는 소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그때 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있었는데, 조물주와 창조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인간들은 인간을 만든 조물주를 찾아 우주를 찾아헤맨다. 그러나 성경에 적혀있던 것처럼 조물주가 창조물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는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신이 인간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사랑할 수 있을까? 세상에 당연한 게 있을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조물주에 도전하기 위해 괴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마찬가지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로 한다. 신의 권능은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것. 괴물은 말한다. 나의 사랑은 자살을 선언한 사이보그.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쿵, 하는 그 소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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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케 작가 매들린 밀러 출판 이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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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부는 그저 그랬는데 오디세우스가 나오는 후반부부터는 단숨에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중간 정도 읽고나서 생각했던 결말이 정말로 결말이어서 너무 놀랐다. 그만큼 개연성 있다는 뜻이었고 그게 '맞는' 결말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글을 어느 정도 쓰다보면 작가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글을 쓰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부터 흡입력이 생기고 이야기의 질서가 바로 선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런 부분을 찾아낼 때 마법에 걸린 기분이 든다. <키르케>의 주인공이 마녀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신화 속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겁탈당하고. 당하기만 하는 소유물로 여겨졌던 님프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랬던 키르케가 미지의 힘을 손에 넣고 위대한 영웅들보다 위대해졌을 때 그 여자는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헬리오스의 가장 보잘 것 없던 딸이자 님프가 어떻게 위대한 아이아이에(Αἰαία)의 마녀가 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모든 인물들의 양면적인 모습을 다룬다는 것이다. 신의 광휘와 잔인함. 지혜와 욕망과 명예. 권력을 손에 쥔 남자가 어떻게 변하는지, 파워게임을 하는 연인이 어떻게 상대를 유희거리로 삼는지, 마녀의 아들이 어떻게 반항하게 되는지. 나는 키르케가 남자를 돼지로 만들어버린 것을 십분 이해한다. 모든 것에는 맥락이 중요하다. 나는 마녀가 주문을 외울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카타르시스는 "정화"라는 뜻이 있다.

    글라우코스도, 헤르메스도, 다이달로스도, 오디세우스도, 심지어는 그의 아들인 텔레고노스도 키르케를 떠났지만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만은 남았다. 그는 아버지처럼 명예와 지략을 쫓지도, 권력과 전쟁과 지평선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는 앞마당의 흔들리는 판석을 고정하고 양의 털을 빗기고 다리 높이가 맞지 않는 탁자를 손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키르케의 곁에 남을 수 있었다.

    엑스트라를 주연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심술궃은 마녀라고 생각했던 키르케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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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쓴 작가님의 작품이었네요! 키르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는데, 오디세우스의 관점이 아니라 키르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흥미로워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서평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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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의 몽타주 작가 박찬욱 출판 마음산책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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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글을 웃기게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글들이 대개 그렇다. 딸애의 가명을 종팔이로 짓는다던가, 월드컵이 보기 싫어 한국을 뜨고 싶었다는 에피소드 등이 그러하다. 좋은 유머는 지성과 위트에서 나오는 법, 책을 읽는 내내 '웃기고 싶다!'라는 유머 감각에 대한 열망이 드러났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저런 영화 만드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다행히 책을 몇 권 쓰셨기에 읽어볼 수 있었다. 그의 영화가 취향이 아니더라도 책은 재밌게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촬영 현장 비하인드를 비롯하여 언론사의 천편일률적인 질문에 대한 답안도 만나볼 수 있는데, 일종의 해명처럼 느껴져서 제법 웃겼다. 꼭 영화를 보고 책을 읽기를 권한다. 책을 먼저 읽으면 이해하기도 힘들뿐더러 곳곳에서 스포일러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에... 못해도 <친절한 금자씨>까지 보고 가면 참 좋다.

    창작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훌륭한 창작자에겐 영향을 준 천재가 있고, 또 그 천재에게 영향을 준 평범한 사람이 있고, 평범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훌륭한 창작자가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유수풀장에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거다. 그래서 세상엔 완벽한 것이 없고, 늘 변화하는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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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감독님이 책을 내셨던 줄은 몰랐네요. 감독님의 영화를 즐겁게 봤던 터라 책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창작자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참 흥미로운 일인 것 같아요. 우리도 어쩌면 훌륭한 창작자에게 영향을 주는 창작자일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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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감독님은 머릿속이 궁금한 분 중 하나시죠~ 창작자와 천재, 평범한 사람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완성시켜준다니! 늘 작품을 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저에게는 참신한 해석이네요~ 덕분에 몰랐던 박감독님의 유머러스한 면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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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 출판 황금가지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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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이다. 사실상 최초로 읽은 추리 소설이자 스릴러 소설이기도 하다. 아는 것이라고는 <명탐정 코난>밖에 없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추리 소설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한 호화롭고 고립된 섬에 초대 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이유 없이 죽기 시작하며 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며 추리하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라는 동요가 있다. 섬에 초대 받은 사람들은 동요의 노랫말과 같은 방식으로 죽게 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죄를 짓는다. 그러나 어떤 죄는 법으로 처벌 받고, 어떤 죄는 죄인 것이 자명함에도 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분노한 경험이 있을 것이고, 현대의 미디어에서는 개인이 대신하여 벌을 집행하는 전개가 다수 등장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과거에 어떠한 죄를 저질렀다. 섬에 갇힌 이들이 알 수 없는 범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며 글을 읽으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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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동요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살해되는 방식에 이용되었다는 것이 참 흥미롭네요. 그리고 또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 누구일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요즘 추리 소설을 안 읽은 지 꽤 됐는데 이 책을 읽어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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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최근에 안 사실인데 우리나라에만 제목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고 다른 나라로 가면 다른 제목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 맞게 제목을 바꾼게 정말 신기해서 기억에 남네요. 저도 오랜만에 본 책이라 내용이 가물가물한데 한번 다시 읽어보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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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작가 스티븐 호킹 출판 까치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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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과학은 종교와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는 늘 '빅 퀘스천'에 대답하기 위해 고뇌했고, 과학과 종교는 모두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수천 년을 보내왔다. 빅 퀘스천이란 '인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세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유한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등의 큰 세계관적 질문을 뜻한다.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이 질문들을, 스티븐 호킹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나는 과학자가 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장이 화려하진 않더라도 이해하기 쉽고 명료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을 위해 차근차근 풀어낸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들의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따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거기다 스티븐 호킹의 글은 유머 감각이 있다. 재미있고 웃기다. 위트와 유머는 지성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이라는 영제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도, 종교도, 철학도 시원하게 밝히지 못한 빅 퀘스천을 호킹은 저만의 방식으로 간결하게 대답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호킹을 따라 우주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명확한 목적지에 우리를 데려간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새로운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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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양장본 Hardcover) 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출판 까치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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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진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끼게 해준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보도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사진을 예술을 반열로 올린 초기 사진 작가이다.

    "나는 사진이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준비된 자만이 결정적 순간에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움켜쥘 수 있다. 우리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정적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 그의 사진 작품들은 우연히 찍힌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치열한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는 일체의 인위성에 반대하며 연출이나 플래시 사진을 자르는 행위 등을 배제하는 대신, 대상이 본질을 드러내는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셔터를 누른 그 순간 본능적으로 정확한 기하학적 구도를 고정시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항시 구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순간 그것은 직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인간, 그리고 가장 짧고 덧없고, 위협받는 우리 인간의 삶. 그가 붙잡은 사진 속 순간들을 살펴보면 찰나의 시간, 정지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나는 구도나 색감이 아름다운 사진도 좋지만,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사진들이 좋다. 보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사진이. 그래서 브레송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초상 사진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데도 그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삶과 가치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찍은 <내면을 담은 초상>을 보면, 그가 우아하고 세련돼 보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의 조각품인 'Walking man'과 흡사해 보이는 자코메티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작가와 작품이 하나가 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진 작가가 된다는 건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서조차 반짝이는 원석을 발견할 줄 안다는 것이다. 마치 소매치기나 포사수처럼 슬쩍, 남몰래, 재빨리, 현실이 제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 셔터를 눌러야 한다. 매순간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먼지 하나 없는 안경을 낀 것처럼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의 눈을 닮고 싶어서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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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님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시나봐요! 지금까지 사진에 대한 매력을 잘 알지 못했는데, 8님의 서평에서 묻어 나오는 사진에 대한 사랑 덕분에 조금 관심이 생겼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몇십 시간, 혹은 몇 년씩을 기다리는 사진사들의 모습이 멋져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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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질 결심 각본 작가 정서경 출판 을유문화사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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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각본은 소설이나 수필과는 대단히 다른 성격을 지닌 글이다. 유태오 배우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 각본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각본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이유는 제공하는 힌트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감정을 자세히 서술하지도 않고 행동 지문이 눈에 그려지지도 않는다. 많은 부분을 상상을 통해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각본만 보아서는 이게 어떻게 영화가 됐지? 하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감독이 됐다 생각하고 스토리보드와 비교해보고,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영화를 읽어낼 때는 최대한의 상상력을 꺼내야 한다. 사소한 오브제와 연출 속에서도 힌트를 얻어야 하고 각 인물의 입장에서 다각도로 사건을 바라보아야 한다. 헤어질 결심의 경우 전반부인 '산'은 형사인 '해준'의 입장에서, 후반부의 '바다'는 피의자인 '서래'의 입장에서 전개된다. 이렇게 전복된 시선 차이에서 관객은 두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감정의 동요가 일었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특별하다.

    <헤어질 결심>은 특이하게도 중국어 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자막이 깔리지 않아 기계 음성의 번역만 듣게 되거나 아예 무슨 의미인지 알려주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한 언어의 단절과 이음은 영화에서 매우 흥미롭게 작용한다. 하지만 각본에서는 모두 한국어 번역이 간체자 아래에 적혀 있다. 분명 같은 대사인데도 각본으로 읽는 것과 영화로 들은 것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정서경 작가가 그려내는 여성 캐릭터를 사랑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며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꼭 합법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무결한 여성 캐릭터보다는 여러 가지 흠을 가지고 다양한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캐릭터가 좋다.

    이 각본의 '서래'는 팜므파탈 클리셰를 비트는 인물이다. 전반부에서 '서래'는 '조금만 잘해주면 알아서 다 해 주는' 형사를 꼬여낸 전형적인 팜므파탈 캐릭터로 보인다. 그 꼬임에 넘어간 꼿꼿한 형사였던 '해준'은 '서래'를 위해 형사라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를 모두 내려놓는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항복 선언이다. 그러나 서래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사랑은 고작 의심을 벗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닌, 훨씬 더 커다란 것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어떤 슬픔은 파도처럼 넘치는 것이 아닌 물에 잉크가 퍼지듯 다가온다. 서래의 사랑 역시 그랬다. 세상엔 장미 꽃다발 같은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서 누군가는 고양이가 죽은 새를 선물하는 것 또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청룡 영화제에서 탕웨이가 영화 삽입곡인 정훈희의 <안개>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도 헤어질 결심을 통해서야 완결될 수 있었던 둘의 사랑이 오랜만에 다시 떠올랐다. 아직도 해준은 이포의 바다에서 서래를 찾고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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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본이 있는지는 몰랐어요! 개인적으로 이번년도 영화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인데 정말 잘 만든거 같아서 다시 한번 볼려고 기대중인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기전에 각본을 보면서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하였던 대사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정말 기억에 남는 대사인데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항복선언이 맞죠.. 물에 잉크가 퍼지듯 다가온다.. 얼마나 멋있어요,,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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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없는 사람(양장본 HardCover) 작가 커트 보네거트 출판 문학동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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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네거트는 '농담'으로 유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글을 읽어보니 그들의 통찰과 유머의 원형이 이곳에서부터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농담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신랄하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는 국가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매카시즘부터 홀로코스트까지, 모든 권력이 억측가들의 손에 있다는 것에 분노하는 동시에 유머러스하게, 우리에게 현명한 사람이 될 것을 촉구한다.

    pp.125-127
    농담을 제대로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고양이 요람>에는 아주 짧은 장들이 있다. 각 장은 하루치의 작업이고 하나의 농담이다. 만일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글을 쓴다면 효과를 내기 위해 순번까지 매겨가며 글을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비극적 장면은 불발탄으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필요한 요소들이 갖춰지기만 하면 비극은 반드시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농담은 무에서 시작해 쥐덫을 만드는 것과 같다. 터져야 할 때에 터지게 하려면 정말 피터지게 노력해야 한다. (...)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지치고 뉴스가 너무 끔찍하면 유머는 효력을 잃게 된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 앞으로 백 년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웃는다면 아주 기쁠 것 같다.

    p.93
    모든 권력은 억측가들의 손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병균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도 똑바로 주시해야 할 억측가들에 관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다.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래서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는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달라.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당신의 생명을 구하라.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달라.



    어쩌면 현대적 영웅은 사람들이 무심한 일, 즉 어머니와 아기들 또는 노인들처럼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력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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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하지 않는다 작가 한강 출판 문학동네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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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형태의 작별들로 심란했던 때, 이 책을 읽게 됐다. 앞부분을 읽는 내내 내 이야기도 아닌데 강한 심리적 동요를 느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책장을 덮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했다. 글로만 읽는데도 눈앞에 그 장면이 선연히 보이는 것 같아서 눈을 찌푸리면서 읽었다. 영화라면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되겠지만 책은 그게 불가능해서.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십오 년 전, 한 노인은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바다에 던지는 것을 본 이후부터. 그 문단을 읽는 순간 프리모 레비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자꾸만 '어떻게'가 떠올랐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를 죽일 수가 있어. 어떻게 그토록 무지하고도 거대한 악을 저지를 수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겨울 제주에서는 총칼로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보통의 일이었다.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주체성 없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악은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가.



    아렌트에게 홀로코스트, 대학살은 인간성의 형이상학적 파괴였다. 이러한 국가적 범죄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나 인간이 아니다. '근본악'이다. 아렌트는 오직 '인간만이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범죄는 용서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런 일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망각하지 않고 뼈와 가슴에 새기겠노라 다짐할 수 있을까.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만 한다는 말이 있다. '작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 글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쩌면 작별이 슬픈 이유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린 손발과 비행기 활주로 아래의 뼈를 보며 괴로워도 두 눈을 감지 않는 것.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는 것. 그것은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그곳으로부터 온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이승은 시인의 <굴절>이라는 시를 생각했다.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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