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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출판 창작과비평사단편집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첫 단편부터 몰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첫 단편인 <마른 꽃>이 가장 인상깊었다. 평소 생각하던 부분이 아니라 그런가, 제목 때문인가. 읽으면서 조박사님이 마른 꽃으로 표상된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할머니 스스로가 마른 꽃이었다.더보기
p34.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짜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쳐져 있었다. (중략)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늙은 몸을 이렇게까지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본 적이 있나? 추하지만 그럼에도 세월의 방증이니 아름답다-고 말하는 작품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 상상이 되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디에서도 미학을 느낄 수는 없다. 사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곳은 그럼에도 상체는 괜찮다며 자위하면서도 거울에게는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이다. 60이나 먹은 노인이 돼서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는 어렵구나. 자기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괴리가 크면 클수록 스스로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다.
p41. 나는 성묘하기를 좋아했다. (중략) 거기서 느끼는 깊은 평화에다 대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큰 기쁨이나 슬픔도 그 위를 스치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죽은 평화가 아니었다. 거기 가면 풀도 예쁘고 풀 사이에 서식하는 개미, 메뚜기, 굼벵이도 예뻤다. 그의 육신이 저것들을 키우고 있구나. 나 또한 어느날부터인가 그와 함께 저것들을 키우게 되겠지, 생각하면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죽음이 겁나지 않았고, 미물까지도 유정했다. (중략) 그 보장된 평화와 자유로부터 일탈할 어떤 유혹도 있을 수가 없었다.
친할머니가 성묘를 정말 중요시하신다. 정작 당신은 가지 않으시면서 아들에게는 무리를 해서라도 가라고 하신다. 얼마 전까지도 이해가 안됐는데, 아마 지금보다 젊은 날의 언젠가 저런 경험을 느낀 적이 있으시니까 그런가보다 싶었다. 나는 성묘를 가서 저런 느낌을 느낀 적은 없지만 성당에 가면 엇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현실의 고민은 부유하는 먼지가 되고 만다. 미사를 드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와 같은 유한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하고 일상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들까지 자신의 탓이라고 발음하는 그 기도에서 힘을 얻는다. 결코 죽은 평화가 아닌거다. 남에게 잘못을 미루고 나만 평온해지는 평화가 아닌거다. 그 다짐을 듣고 있노라면 내 고민들이 잔물결이 되는 느낌이 든다. 난 생각이나 걱정이 많아 탈인데, 미사를 드리는 행위가 나한테 이렇게 도움을 준다. 그래서 힘들 때면 의지하러 성당에 가곤 한다. -
소년이 온다 출판 창비<소년이 온다>_한강,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하지 않았던.더보기
‘혼자 살아남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 것조차 버거웠다. 고작 종이 한 장의 무게는 내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간과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담은 듯했다.
시민들은 총을 들었지만 쏘지 않았다. 여지껏 역사를 배우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던 그들의 존엄성은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쏘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살인으로 얻어낼 가치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감내했다. 그 대목에서, 그들의 행동은 마치 그들이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영혼은 그때부터 깨졌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살아있는 영혼이 나을까. 그러나 누구도 거리로 나서지 않은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만약 내가 그 시간과 장소에 있다면 난 행동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나를 잘 안다. 눈 돌리지는 않았겠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군중에게서 발현되는 특정한 윤리적 파동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 태어나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반 친구들을 모아 구호 물품을 직접 팽목항으로 전한 기억이 있다. 그 때 나에겐 그게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으며, 본능적으로 무엇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던 것 같다. 무엇이지 않기 위해 했던 첫 번째 행동이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까지도 학생의 사회참여가 어른들에게 달갑게 비춰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위안부’ 수요집회 참여라던지, 여러 가지의 것들을 했다.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내가 어릴 적엔 본능적으로 피했던 ‘무엇’이 되어가는 것인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거야.’
투쟁했던, 어딘가에 실존해있을 인물들은 그렇게 한 몸 으스러져라 증명했다. 나는 무엇을 증명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증명해낸 것을 나는 존중하며,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나. 삼청교육대, 군사 독재 정권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분노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음에도 고통이 뼈저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부모님을 신고해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학교에서 자신의 부모라도, ‘대통령’에 대해서 허튼 말을 하면 빨갱이이니 당장 신고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농담처럼 건네신 말씀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린 아이를 이렇게 세뇌시켰구나, 정말 괴물이 따로 없었구나 소름이 끼쳤다.
1980년 5월. 42년 전의 그날들을 이렇게라도 새길 수 있어서, 지금이라도 새기게 되어 다행이다. 내가 이들의 후손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이다.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용기와 영혼의 파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매년 5월이 되면 다시 펼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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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셨네요. 많이 들어본 책의 제목이지만 쉬이 읽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ㅁㅈ 님의 서평을 읽고 나니 한 번 꼭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저 또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학생회나 동아리에서 하는 캠페인에 참여한 기억이 있는데, 그때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그런 구호운동이나 캠페인을 하는 것을 많이 불편해하셨던 게 떠오르네요. 만약 초등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의 사회 참여에 대해 어떤 태도로 어떻게 지도해야할지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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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으로 리뷰를 쓸까 했는데, 남겨주신 글 보고 ‘소년이 온다’ 북토크를 꼭 적어야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정확하지 않음) 책 맨 뒤에 평을 신형철 평론가가 해주셨던 것 같은데, 펼쳐보기도 전에 뒤표지를 먼저 읽으면서부터 눈물을 흘릴 뻔했던 것도 갑자기 기억이 났네요. 추상적인 단어가 많음에도 전혀 현학적이지 않고, 오히려 가장 구체적으로 가슴에 박히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으셨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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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안전가옥 쇼-트 2) 출판 안전가옥이 책은 어떤 북스타그래머 분께서 내 글을 읽고 추천해주셨다. 제목에 거부감이 들어 읽기를 미루다가 추천 받은 지 반년이나 지나서 읽게 되었는데 기대를 안 한 탓인지 정말 재밌게 읽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두 시간도 안 되어 다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보통 단편 소설집의 제목은 작가가 가장 애정을 가지거나, 유명한 작품의 제목으로 하기 마련인데 나는 <습지의 사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이 <습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여느 흔한 소설집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습지의 사랑은 함수같다. 어떤 형태의 사랑을 대입해도 작가가 의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더보기
p74. Cocktail, love, zombie
청춘인 우리의 모든 사랑의 형태는 소주로부터 시작한다. 소주는 착란의 힘을 빌려 人間을 ‘삶’으로 바꿔 우리 앞에 내보인다.
p44. 헐레벌떡 멀어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증오와 부러움, 그 두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자신의 영역에 멋대로 침입한 이들을 쫓아 내고 싶다가도 발목을 붙잡고 가지 말라 외치고 싶었다. 장난은 짧았지만 외로움은 길었으니까.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외로움을 많이 탄다. 또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정이 떨어진다. 내 영역에 누가 침범해주었으면 하지만, 아무도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 내 영역에 들어온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내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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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어도 외로운 이 감정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잠시 잊는 것일뿐. 이 외로움의 감정은 나의 외부의 것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채워야 사라지는 건가봐요.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책 제목이 굉장히 매력적이네요. 제가 이 책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봤다면 한번쯤은 책꽂이에서 이 책을 꺼내보았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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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있는 것을 보고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씀을 들으니 이번에 한 번 빌려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발췌한 문장들을 읽으니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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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삶’의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인간은 이미 정의된 존재, 시계열에 있지 않고 고정된 사전적 의미처럼 다가온다면, 삶은 연속적이고, 따라서 time line안에 있으며, 또 역동적인 어떤 ‘운동’처럼 다가오는 것도 같습니다. 솔직하게는 줄거리가 어떤지 몰라서 선뜻 펼쳐본다고 말씀은 못 드리지만, 삶의 어느 순간에 마주치게 되면 피하지 않고 읽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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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출판 문학과지성사‘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더보기
장을 열며 비행기의 궤적을 그리는 구름이 떠올랐다. 책을 읽다 봄, 제목이 非행운인가 싶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비행을 동경하지만 땅에 납작 붙어서 그러한 궤적을 눈으로 좇기만 하는 누군가를 위한 헌제’라 정의내렸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짜증나게도 미영은 나와 닮았다. 알 수 없는 우울에 싸여있고, 이따금 그러한 우울 때문에 스스로가 특별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좋아했던 사람의 배경마저도 닮았다. 미영은 문득 스스로가 살아있어, 사는 동안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많이 아팠을거라고 생각하며 당혹감에 눈물을 흘린다.
미영과 많이 닮은 나의 여름은 어땠나. 함께 쓰는 우산은 항상 기울어져 있다. 그 기울기는 날카로운 예각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까, 아니면 부드러운 둔각이 되어 쉴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줬을까.
<하루의 축>
기옥의 축은 어디를 향해있나. 명품이 명품인지 몰라서 짝퉁을 들어도 창피하지 않은 사람. 추석이라고 새 밥을 안쳐놓고도 그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 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결국 사식마저 준비해야 하는 사람. 기옥의 축은 한 번이라도 당신을 향한 적이 있을까.
어떤 것들은 소중하게 여길수록 금세 한 움큼의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만다. 언젠가 분명하게 내 인생의 중심이었던 축은 무너진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며, 또 다른 축을 세워야만 한다. 기옥을 만나면 안녕을 건네고 싶다. 공항에서 청소를 하며 알 수 없는 나라의 말들로 수없이 들었을 그 인사들을.
<서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떠올랐다. 수인은 자라서 ‘나’조차 되지 못한 것 같다. 결국 자신에게 순수한 온기를 나눠주었던 학생을 저버린 것을 보면. 파도는 내내 부서지면서도 아름답다. 하얀 물거품으로 갈라지는 거대한 파랑은 수인을 향한 학생의 순수하고 맑게 어린 애정 같아서, 수인이 경멸스럽기까지 했다. 실패로 점철된 그녀의 이십 대는 나로 하여금 철없는 고해성사를 하게 만든다.-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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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이 문장은 어떤 노래 가사에도 포함되어 있어 알고 있던 문장이었는데 이 책에도 등장하네요.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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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문문의 이죠?! 저도 그 가사가 훨씬 익숙한데 그 가수가 이 책을 표절한거라고 하더라구요...떼잉... 사실 저도 표절 이슈 때문에 읽게 된 책이예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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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수의 노래의 노랫말 중 말씀해주신 문장(‘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이 있다고 들어서 알게 된 책인데 여기서 보니 또 반갑습니다. ‘바깥은 여름’으로 만나 뵈었던 김애란 작가님인데 당시에 간단히 적어놓은 서평을 보니 ‘평소 좋아하던 시를 이야기로 풀어 쓴 느낌. 보물을 찾은 것 같다.’고 해 놓았네요. 작가의 문체가 맞아야 글이 술술 읽히고 더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은데, 남겨주신 ‘비행운’도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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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출판 마음산책잘 짜여진 소설의 느낌보다는 습작의 느낌이 강했다.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굉장히 짧은 단편이지만 정말 잘 짜여졌다고 느껴졌는데, 이런 식의 완성도 높은 단편소설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냥 습작 정도다. 또 흔치 않게 유채색의 삽화가 있었는데, SF소설이라 오히려 삽화가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해놓는 느낌이라 그닥 달갑지 않았다.더보기
균사체와 인간의 네트워크를 다룬 단편에서는 <한니발>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쇄살인 드라마인데, 거기서 균사체의 독특한 생존방식을 사용해 인간을 버섯의 퇴비로 사용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래서 기괴한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피해가는 게 좋을 듯 하다.
<행성어 서점>
단편소설집의 제목을 차지한 이유를 알겠다.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그 장소에서 경험하게 되는 완전한 이방인으로써의 체험을 애정하기 때문이다. 온갖 정보가 내 주위에 있지만 나에게 흡수되지 못하고 그저 배경으로 스쳐지나가기만 하는 낯섦을 좋아한다. 읽히지 않음으로써 내게 가치로워지는 그 정보들이 좋다. 마치 통역 모듈 없이 외계인과 소통하는 인간처럼 말이다. 이 단편을 읽으니 오랜만에 여행기가 읽고 싶어졌다.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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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출판 문학동네<알쓸신잡>의 경험을 담은 장이 가장 유명한, 편하게 쓰신 것이 읽으면서도 느껴지는 에세이인데, 여행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나는 다른 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두근거림이 정말로 그립다. 안타깝게도 3년 전 문화교류 프로젝트로 인해 고등학생 때 프랑스에 잠시 다녀온 게 전부다. 한창 우울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시기에 다녀온 프랑스는,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한적한 시골 마을 디종과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파리의 골목은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었다.더보기
‘중국은 그가 처음으로 가본 외국이었고, 젊은 날의 환상이 깨져나간 곳이었다. (중략)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내게 여행은 무엇일까. 좋은 기회로 선발되어, 그렇게 목매던 모의고사마저도 뒤로한 채 떠났던 프랑스는 내 인생의 향로를 미묘하게 틀어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인연들을 만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 성차별, 인종차별을 당함으로써 내가 앞으로 헤쳐나갈 현실을 직시하기도 했으며, 나는 무엇을 목표로 두어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이다.’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마 이때의 집은 내 거주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을 만한 장소를 말하는 것 일터다. 그래서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자유롭고, 오히려 그곳이 안락한 집인 듯 느껴지는 거다. 발상과 지혜는 무게가 없다. 무형의 자산을 가지면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어딘가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바깥의 무게는 줄이고 내 안의 무게는 쌓아 묵직한 사람이 되어야,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구는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작고 외로운 구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구슬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곳이며,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다. 인류 최초로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했을 때, 우주비행사들은 어떤 감정으로 지구를 바라보았을까. 한없이 작은 스스로를 깨닫고 삶에 더 큰 애정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인류를 지구의 승객이라고 말한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만큼,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 도착하는 승객들을 안내하는 현지인이 될 차례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이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오디세우스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 오디세우스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의 결핍으로 조망.
+@ 카프카적 kafkaesque
당신이 알던 모든 것들, 행동반경과 행동방식, 계획 등등이 다 틀어지기 시작하는 초현실 세계에 들어서서는, 그 동안 세계를 인식하던 방식이 아닌 뭔가 다른 힘을 강제하는 걸 느낄 때.-
여행의 이유에 대하여 고민해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여행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후에 생각해보면 여행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썼는데, 이돈으로 옷을 샀으면 어땟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글쓴이님이 적어주신 것처럼 여행을 통해 뭔가 다른 힘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이것에 대한 값을 지불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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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양장본 HardCover) 출판 창비<아몬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지는 좀 됐다. 그런데 고전이나 명작이라고 이름난 도서가 아니면, 유행 따라 보여주기 식으로 책을 읽는 속물적인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이 책을 피하고만 있었다. 대략 감정이 없는 소년에 대한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랑 인연을 맺게 됐는데, 그래서 이 책에 호기심이 일었다.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있었다.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다.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이 개연성이 깊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막장 드라마의 각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책이 거의 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서 아쉽다.더보기
요약하자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가족의 죽음에도 덤덤하다가 자신에게 슬픔을 알려주려는 친구와 좋아하는 여자애 덕분에 감정을 되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가 눈 앞에서 칼에 찔려 죽어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고작 자기 취향인 여자 아이 하나 봤다고 사랑을 알아가는 게 우습다.
p40.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p50.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ㄱ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p176.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내가 얼마 전에 소중한 사람한테 편지를 쓸 때도 했던 말이라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내 입에서 나와서 그 사람에게로 갔을 때, 우리만의 파동이 전해지니까 모든 사랑은 남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몬드란 책은 예전부터 매우 유명했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에 매마른 학생이 감정을 찾아가는 이야기지요!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당시가 고등학생 때인데 당시에는 이 내용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고 그저 신기한 내용으로만 다가왔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책을 살펴보니 주인공의 감정이 매마른, 아니 감저이 없는 상황이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너무 바쁘고 지친 삶에 새로운 스파크를 만들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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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출판 블랙피쉬전시회를 곧잘 다니고는 하지만, 항상 지식이 부족해 온전히 작품을 음미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쉽게 교양 미술에 다가가고자 선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한정적이다. 살바도르 달리, 블라디미르 쿠쉬, 마르크 샤갈. 그러나 이들을 잘 알려면 이들이 영감을 얻었던 기성세대 화가를 알 필요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화가의 대표작을 줄줄히 설명해 놓은 것이 아니라 덜 유명하더라도 그 화가의 정신과 삶을 잘 알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설명이 되어있다는 것이었다.더보기
구스타프 클림트_Rule breaker to Rule maker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어린 아이’가 되라고 말했다. 삶의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고 사막으로 나아갈 끈기, 고통의 인내를 넘어서는 투쟁정신, 그리고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낼 창조정신을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가 되라고 했다. 앞으로 현장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만큼, 아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아이의 완전무결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저 문장을 여러 번 곱씹었었다. 그런데 클림트의 혼을 담아 죽기 전 완성된 걸작이 이러한 창조정신과 예술적 자아를 담은 마지막 자화상이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에두아르 마네_입체주의의 구루
<폴리베르제르 바>를 보면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심의 여인은 날 정면으로 빤히 바라보지만, 거울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은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한 그림에 두 시점을 담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그간 입체주의의 선구자는 세잔으로 알고 있던 데다가, 세잔의 그림은 사물 자체가 복수시점으로 이루어져 있어 미술이 낯선 나에게는 오히려 어려웠다. 그런데 마네의 그림은 명확히 두 개의 시점을 담는지라 이 그림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또 <올랭피아>를 처음 봤을 때는 파격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작품의 제목이 19금 성인 BJ이름이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니 그만한 후폭풍을 몰고 왔을 이유가 짐작된다. 올랭피아라는 이름은 그 당시 흔히 사용하던 매춘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늘어지게 누운 백인 여성 뒤로 흑인 여성이 시중을 들고 있어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부유한 여성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이런 내막이 있을 줄이야.
마르크 샤갈_미술계의 윤동주
남녀가 두둥실 떠올라 입을 맞추는 샤갈의 그림만 보고 좋아했던 전의 모습이 우스울 정도였다. 이름이 샤갈이길래 당연히 프랑스 화가인 줄 알았는데, 러시아 게토(유대인 거주 구역) 지역에 살던 유대인이었다. 사랑이라는 캔버스의 반대편에서는 자신의 뿌리와 고통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사회상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하지만 손은 굳은살로 덮여있었다. 나도 벽에 기대앉아 인생을 그렇게 살 운명이었을까? 혹은 물건이 담긴 통을 운반하며 살아야 했을까?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나는 특별한 직업을 찾아야 했다. 하늘과 별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 그래, 껏이 내가 찾는 것이다. 예술가란 무엇인가? 하고 나는 내게 물었다.’
타인의 사조를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의 집중하고, 자신의 삶 그 자체에서 영감을 얻는 그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또 홀로코스트를 고발하고 그러한 비극을 작품으로 남겨 유대적인 요소를 노출하는 모습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시로 저항한 윤동주 시인마저 생각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성경 삽화를 완성한 것마저 자신의 원천을 사랑하고, 생애 끝에 인류애적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비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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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ㅈ님은 전시회를 자주 다니시나 보네요! 정말 좋은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작품의 배경 등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많이 어렵더라고요. 아무리 그 작품의 시각적인 기법이나 색채, 구도 등을 눈으로 보고 파악해도 그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삶, 제목에 대한 사전적인 지식이 없으면 그저 한 번 쓱 훑어보고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니까요. 그렇다고 또 전시회 하나를 위해서 작품마다 일일이 지식을 찾아가며 공부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ㅁㅈ님이 추천해 주신 도서 덕분에 일일이 작품과 작가의 배경을 찾아볼 수고를 덜었네요. 좋은 책 추천 감사합니다. 꼭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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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비룡소 걸작선 13) 출판 비룡소‘사람이란 한갓 자기 안에 있는 시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야. 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큰 존재란다.’더보기
어떤 비는 너무 세차게 내려 숨 쉴 자그만 틈도 없다. 그렇게 내리는 비는 한 모금의 숨 내쉴 공기조차 땅바닥으로 메다꽂는다. 그렇지만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소나기이다. 잠깐 주위를 둘러보면 끝나고 비에 젖은 흙 냄새만 조용히 우리를 반기는.
우리는 항상 소낙비 같은 시간에 쫓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시간에 쫓긴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아끼고,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에 쏟는 시간을 아끼고, 혼자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을 아껴 시간을 만든다. 그렇게 모아둔 시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쏟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모으는가. 낮달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무엇을 좇고 있는지 나조차도 몰라 끝없는 시간의 궤도 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이 세계가 아니라 겁 없는 몽상가들이 언제나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이세계가.
나는 언제나 겁 없는 몽상가가 되길 원하는 지루한 현실주의자다.
도로 청소부 베포_겁 없는 현실주의자
이 노인이 겁내는 것은 없다. 한 번의 비질, 한 번의 숨. 이렇게 작은 일들이 있으면 노인은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 모모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이 노인이 겁 내는 것은 모모를 잃는 것 뿐이다.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꼿꼿히 고개를 들고 있던 노인은 모모를 회색 군단의 손에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내어서라도 모모가 안전하기를 바란다. 노인의 모습을 가만 보노라면 우리 할머니가 떠오른다. 항상 조용하시고 삶에 지쳐보이는 할머니는 나만 보면 어디서 온 지도 모른 듯한 생명력으로 날 맞아주신다. 내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사랑할 사람들은 이런 겁 없는 현실주의자들일테다.
관광 안내원 기기_지루한 몽상가
기기가 모모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여행객들에게 들려주는 오락거리와는 사뭇 달랐다. 진리를 담고 있었다. 가령 요술거울을 혼자 들여다 본 사람은 언젠가 죽는 존재가 되지만 둘이서 거울을 보면 다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이 때의 기기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매 순간 빛났다. 가난뱅이 기기의 탈을 쓴 기롤라모 왕자처럼.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회색 군단에게 시간을 빼앗긴 후로는 기롤라모 왕자의 탈을 쓴 가난뱅이 기기일 뿐이다. 나는 언제부터 왕자의 탈을 쓴 가난뱅이가 되었을까.
모모_겁 없는 몽상가
모모는 그릇이 큰 아이다. 가진 것이 없어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이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겁 없이 나선다. 그저 책을 덮으면 끝 일수도 있겠지만, 모모가 사람들을 구하러 나선 모험기는 우리네 이야기다. 이미 어디선가 일어났을 일 일수도, 앞으로 일어날 일 일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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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란 책은 예전 고등학생 때 읽었던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모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었습니다. 모모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어딜가나 행복했던 모모입니다. 이런 모모를 보면서 내가 모모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게하면서 행복을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윤리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오릅니다. 배려는 상호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나의 배려에 상대방이 반응 하는 과정의 연속이지요. 행복을 누군가에게 주고 행복을 다시 받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며 행복을 주는 도덕함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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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겁 없이 나설 수 있는 모모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한 관심과 시간을 쏟는 것도 대단하고 멋지네요.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걱정되는 일들이 많아서 겁 없이 나서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모모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용기있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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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출판 동아시아<아픔이 길이 되려면>_김승섭, 질병의 사회적 책임.더보기
누군가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면, 내가 그들의 편에 서고 싶다.
세계일보 2022.3.3. “다음 생에는 좋은 부모 만나” ... 생활고에 장애 자녀 생명 뺏은 비정한 엄마들 (//www.segye.com/newsView/20220303517641?OutUrl=naver)
어머니가 근무하시는 대학에 입학한, 장애를 가진 대학생을 만난 경험이 있다. 묘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의 꿈이 뭔지 아냐고 하셨다. 자녀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누가 이들이 이렇게 꿈꾸게 만들었는가.
7p. 관점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고민이지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법 제 2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교육의 이념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해서 동심원을 넓혀가는 크레센도 교육 철학이다.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교육자로서, 먼저 생을 살아간 ‘先生’으로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고 쳐야할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어떻게 해야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로 교육할 수 있을까. 사실 교육으로 이를 바꾸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든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내가 바뀌고, 아이들이 바뀐다.
21p. 차별과 같이 예민한 감정을 측정할 때는 차별을 경험하는 것,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거, 그 인지한 차별을 보고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략)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젠더 갈등이 정점을 찍은 가운데, 누구보다 MZ세대가 고민해봐야 하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본 젠더 교육 영상에서 특히 여성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것에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동안 여성이 외적인 모습으로 인해 받아온 차별에 대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시민 작가님이 2030 여성들의 표심을 보고 말씀하셨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20대 30대 여성들이 처음으로 대선의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유권자 집단으로 떠올랐습니다. 최초로. 젊은 2030 여성 유권자들께 존경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여러분들도 정말 잘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여러분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이고 대화하고 뭉치고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제 이번 대선에 나타난 2030 여성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저는 그렇게 보고요. 여러분들 존경하는 마음으로 늘 함께 지켜보고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102p. 노동자들이 해고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다. 본 연구는 정리해고가 노동자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사회가 소외 계층으로 눈을 돌렸을 때, 폭염과 같은 재해로부터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된 레이온 기계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고, 중국으로 넘어가고. 이젠 북한으로 넘어갈 테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왜 항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 책임을 떠안는가.
118p. 삼성은 두 가지 형태로 작업장의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위험한 작업을 국내 협력업체에 하청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협력업체들은 이러한 작업을 하다 문제가 생겨도, 원청의 눈 밖에 날까 전전긍긍하며 밖에 알리지 않습니다.
전 국민이 가지고 있다는 삼성전자 주식. 물론 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부분을 읽으니 내가 원인의 원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러한 상황에서, 사고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언론에 휘둘려 국민이 2차 가해를 저지른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뉴스가 생생히 기억난다. ‘세월호 참사’이다. 책에서는 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강화된 이유를 언론의 대대적 보도로 본다. ‘원인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한 일터, 민간보험에 치료를 전적으로 맡긴 사회, 고통을 증명하라고 말하는 사회에 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편에 서야 한다면, 내가 그들의 편에 서고 싶다. -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출판 알에이치코리아<두 번째 지구는 없다>_타일러 라쉬, 환경보호를 위한 입문서더보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데 고작 목소리 내길 주저하겠는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목소리를 못 낼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타일러 라쉬 작가님의 행보를 좋아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 항상 배움을 추구하는 모습, 신념을 당당히 내비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들이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참된 ‘어른’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했던 가장 큰 기대도 그거였다. 성인이 되었으니, 다음에는 ‘어른’이 되자고 결심했고, ‘어른’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사회에는 어른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에는 여든 편의 영화를 봤고, 올해는 책 속에서 어른을 찾고자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역시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FSC 인증 종이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인쇄를 했다고 한다. 이 짤막한 소개글을 읽자마자 반성했다. 얼마 전 소비 내역을 살펴보았는데, 옷과 화장품에 가장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다. 패스트 패션 소비가 환경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한 달에 몇 벌은 꼭 옷을 산다. 또 화장품에 동물실험이 수반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고등학생 때 친환경 브랜드 러쉬를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패키징이 예뻐 언박싱을 할 때 만족감이 높은 제품, 보여지는 데에 우선인 제품을 산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은 유행이 꽤나 빠르게 회전해서 당장 패스트 패션 소비를 멈추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약속이 상대적으로 적은 방학에는 옷을 더 이상 사지 말자고 다짐했다. 또 화장품은 앞으로 전부 비건제품을 사용할 생각이다. 찾아보니까 금액이 더 높긴 하지만 근래 생각보다 꽤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학생인 나에게는 금액이 중요하긴 하지만, 몇 천원 정도야 카페 한 번 안 가면 된다.
내가 화장품에 열광하듯 K-beauty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며 자연스레 외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메틱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에서 동물실험에 대응해 비건 화장품을 활발히 생산한다면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세계가 따를 수 있다. 물론 중국과 같이 동물실험이 수반되지 않으면 수출이 불가한 국가도 있다. 기업의 친환경적인 시도와 더불어 법적, 정치적 대응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정경유착과 환경적 이슈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트럼프가 기후위기 행동은 급진적이라며 경시하는 이유가, 로비가 합법적인 미국에서는 기업의 자금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업이 환경을 우선시한다면 경제적으로 부담을 더 져야할 수 밖에 없으니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적 행동을 했던 것이다.
‘가격에는 값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다. 틀린 가격이 우리에게 비싼 값으로 돌아오고 있다.’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바이러스와 관련한 부분이 기후위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절로 경각심이 들었다. 앞으로 기후위기가 계속되면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안에 있던 박테리아가 노출되고, 부패가 지연되었던 사체들의 부패가 진행되며 사체 안의 바이러스가 또 다른 전염병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으로 단절되어 완전히 변한 생태계가 충돌하면 어떤 후폭풍을 일으킬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에코 테러리즘 공부해 볼 것. 다른 환경 관련 책 더 읽어볼 것. 시스템적 사고할 것.-
두 번 째 지구는 없다는 책의 제목에서도 환경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성자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부채가 지연되었던 사체들의 부패가 진행되고 바이러스가 또 다른 전염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지금은 편하고, 삶에 직접적으로 와닿지는 않지만 조금씩 우리는 느끼고 있습니다. 매년 올라가는 연평균 기온입니다. 여름이 정말 이렇게 더울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이렇게 생각보다 따뜻한 것이 신기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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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출판 김영사<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_호프 자런, 거시적으로 세상 보기더보기
타일러 라쉬 작가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환경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환경 문제를 다룬 서적에 관심이 생겼고, 이 책을 택하게 되었다. 전자가 내게 심각성을 일깨워 눈을 뜨이게 해 준 책이라면, 후자는 내게 실천을 도모하게 한 책이다.
‘굶주림은 지구의 공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생산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실패로 등장한 문제다.’
육류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자원 투입이 필요하다. 방대한 자원이 투입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결과물을 얻어 진다. 육류를 생산하느라 지구상의 먹을 수 있는 곡물 1/3이 사라진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하니 당장 내 섭취 습관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그렇듯, 우유를 짜내는 젖소는 365일 임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새끼를 배서, 젖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유부터 당장 아몬드 브리즈로 바꾸었다. 아몬드액이라 상하지도 않고, 칼로리도 더 적으니 오히려 좋다. 당연한 것인데 자각을 못하고 있던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육류 섭취를 하지 말자. 고등학생 때 영화 <옥자>를 보고 비건을 실천한 친구가 있었다. 함께 실천해보려고 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 보리라 다짐한다. 이 책을 통해 2022년 목표에 몇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생선도 마찬가지다. 어획량의 1/3이 양식장의 물고기 먹이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먹이가 되는 작은 물고기들은 먹이사슬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다. 이 말인즉슨, 바다 생태계의 토대라는 얘기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것이 바로 바다다. 삼림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더욱 안타까웠다. 이렇게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해도, 정도를 넘어 산도가 높아지면 지금 진행되고 있듯 총천연색의 산호초는 훼손되고, 껍질이 있는 해양 동물은 단단한 외피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덜 쓰고, 더 신경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곳곳에서 ‘비건’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좋은 현상이다. 그렇지만 비건이나 환경보호가 왜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보호를 실천하는지 알고 있어야 이러한 긍정적인 실천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1 person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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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환경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에서도 호나경에 관한 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과거와 달리 정말 풍요로워 젔습니다. 그에 비해 지구는 아프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 나갔을 때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학생ㄱ들에게 환경보존의 중요성에 대하여 교육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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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책을 봤어요! 최근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여러 책을 읽다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덜 쓰고, 덜 먹고, 덜 사자는 작가의 주장을 저도 실천하고 싶어 조금씩 제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육고기나 연어 등 붉은 살 생선을 먹는 외식 비중을 줄이고, 매 달마다 하나씩 사던 옷도 저번 달부터는 안 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중에도 가끔씩 회의감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저번에 할인을 하던 큰 옷 가게에 들어갔더니 수백 수천 벌의 새 옷들이 널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우울해졌습니다. 저 방대한 옷들이 다 팔리지도 않을텐데 왜 저렇게 많이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옷 하나를 덜 사도 남아도는 옷가지가 저렇게 많은데 결국 나의 행동이 환경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ㅁㅈ님은 이런 사회적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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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제서야 확인했네요...! 저는 그럴 때 오히려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고 해요. 제 본가에서 다니는 성당에서는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서 가져오면 업사이클 센터로 대신 보내주거든요! 이런 식으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려고 해요. 왠만하면 음식은 포장하지 않고 식당에서 먹으려고 하고, 그게 어렵다면 배달음식을 시킬 때는 \'일회용품은 주지 마세요\'란을 꼭 체크합니다.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 사는데 그냥 집에서 수저 세트만 가져와도 줄일 수 있는 일회용품 사용량이 현저히 줄어드니까요! 이렇게 질문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3 뜻이 맞는 분을 뵐 수 있어서 너무 신나네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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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에디터스 컬렉션 10) 출판 문예출판사<구토>_사르트르, 인간은 무이기에 이러한 무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형성할 수 있다.더보기
83p. 그 태양과 파란 하늘은 속임수일 뿐이다. 그것들에 백번은 넘게 걸려들었다. 내 추억들은 악마의 지갑 속에 든 금화와도 같다. 지갑을 열어보면 낙엽밖에 들어 있지 않다.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대상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작열하는 태양과 쳐다보노라면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되는 광활한 하늘을 속임수라고 칭하는 데에는, 로캉탱, 혹은 사르트르가 패기를 넘어 오만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를 속임수라 칭하는 것을 만용으로 느끼는 내가 그것들에 이미 걸려든 것일까. 지나간 내 추억들은 천사의 지갑에 든 낙엽이 되는 편이 좋을까, 악마의 지갑 속에 든 금화가 되는 것이 좋을까. 내가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언제까지 금화로 남아있어 줄까. 나는 무심코 열었을 때 낙엽으로 변한 추억일지라도, 그 낙엽을 보면서 사색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95p. 먼저 시작은 진짜 시작이어야 했다. (중략) ...갑자기 나타나면서 권태를 멈추게 하고, 시간을 단단하게 만드는 진짜 시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일어났어.’ 라는 생각이 든다. 즉시 우리는 이것은 그 전모가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어떤 커다란 형태의 전조임을 깨닫고는 ‘뭔가가 시작되고 있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러한 진짜 시작을 찾고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그리 동감하지 못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진짜 시작’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어떤 일에 골몰했을 때보다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끝에 가보니 어떤 우연함이 진짜 시작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기는 하다만. 어쩌면 <구토>를 읽고 자판 앞에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 이 순간이 어떠한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201p. 그는 결코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무언가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에도 “조금 쉬는 거야”라고 말하며 절제하고 즐겼을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 있어서는 쾌락도 권리들 중의 하나가 되면서 그 위험한 무용성을 상실했다.
사르트르는 이를 비판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끝없는 절제와 한계에 대한 도전은 존경스러워 보인다. 의무를 이행했을 때 보상처럼 느껴지는 쾌락과 언제든지 박탈 당할 수 있는 권리가 동의어가 되다니. 위험한 무용성을 상실한다는 말 뒤엔, 잘 벼려진 검과 같이 언제든 최고의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숨겨진 것 같다.
204p. 경험은 죽음에 대한 방어물 이상이라는 것을, 하나의 권리, 늙은이들의 권리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234p. 여기에는 끝이 없다. 이게 다른 무엇보다도 고약한 것은, 내게 책임이 있고, 내가 공범자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존재한다라는 일종의 고통스러운 강박관념을 유지하는 것은 나다. 바로 나다.
<자살가게>라는 책을 읽고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공범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로캉탱도 같은 생각을 한다.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인 내가 있다.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 생각을 멈추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281p. 독학자가 말한다. “한 인간을 그런 식으로 한정 지을 수 있나요? 그가 이렇다, 혹은 저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누가 한 인간의 의미를 고갈시켜버릴 수 있나요? 그 누가 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습니까?”
295p. 구토는 나를 떠나지 않았고, 나를 빨리 떠날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병이나, 일시적인 발작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299p. 우리는 자기 자신에 거북해하고 당황해하는 무수한 존재자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각 존재자는 당황해하고 막연하게 불안해하면서 스스로가 다른 존재자들에 대해 쓸데없이 더해진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다. 쓸데없이 더해짐. (중략) 그것들 각각은 내가 그 안에 가두려 하는 관계들에게서 벗어나고 고립되고 넘쳐나고 있었다. 이 관계들은 모두가 자의적으로 느껴졌고, 더 이상 사물들과 맞물리지 않았다.
320p. “난 단지 자기가 존재하고, 변하지 않는 게 필요해. 자기는 파리나 그 근방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백금으로 된 미터자와도 같아. 그것을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안니의 말은 잔인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는 존재는 어떤 것일까 싶다. 실제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사무친다.
357p. “불쌍한 사람! 참, 운도 없지. 처음으로 자기 역을 잘 연기했는데, 상대는 고마워할 줄도 모르니 말이야. 자, 이제 가.”
안니가 로캉탱에게 작별을 고할 때 한 말이 자조적인건지, 로캉탱을 향한 말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둘 모두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등학생 때 사르트르의 사상을 배웠다. 대학에 입학해서 <데미안>과 사르트르, 데카르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엮어서 발표를 한 경험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철학자이자 가장 어려운 철학자였다. <구토>는 성인이 되고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웠다. 로캉탱은 우울증 환자 같다가도, 편집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가도, 삶에 통달한 것 같다가도, 어린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생각의 흐름이 너무 느리다가,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독학자와의 식사, 안니와의 재회, 도서관에서 독학자를 감싸준 일. 특히 마지막에 독학자를 싸고 돈 것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짧은 내 식견으로는, 그의 외로움을 이해한 것만 같다. 10년 후 쯤 읽으면 같은 대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이 사유를 통해 또 다른 지성의 조각을 모으고 싶다. 더 큰 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도록. -
지구에서 한아뿐 출판 난다몇 시간 만에 앉은 자리에서 읽었다. 소설이 가벼워서 생각할 거리가 크지는 않고 기분전환 용으로 좋다. 환경 문제 얘기가 가끔 나오는데, 작가가 의무감을 가지고 탄소 절감에 대한 얘기를 억지로 끼워 넣는 것 같아 흐름이 깔끔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래도 뻔한 사랑 얘기 읽고 싶을 때는 딱이다.더보기
p44. 지구의 위선과 경선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태양을 받은 팔.
어떤 팔인지 상상이 된다. 햇빛을 받으면 털이 희게 빛날 것 같은 강인한 팔이다. 그런데 난 정반대의 팔을 좋아한다. 허여멀건하고 창백해서 회빛이 돌고, 나만큼이나 얇은데 뼈는 단단하고 마디 굵은 팔이 좋다. 얇은 피부 위로 돋는 핏줄도 좋다. 초코칩 박힌 쿠키 반죽 같은 팔.
p76. 이런 갑각류 같은 사람, 겉껍질 안쪽엔 부드럽기가 그지없었다.
이 문장을 읽고 우리 과 친구가 생각났다. 처음 봤을 때는 얼음 공주인 줄 알았는데 정말 부드러운 친구다. 닮고 싶은 친구 중 하나다. 단단하고 심지가 곧다.
p90. 한아가 기억하는 경민은, 언제나 공기를 자기만의 색으로 채색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도 되고 싶다. 덧붙여 누군가 나를 어떠한 색으로 생각해준다면, 기꺼이 그 색에 맞추어 살아가고도 싶다. 꽃에 비유하면 나를 장미 같다고 해주는 언니가 있다. 사실 난 장미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향기도 너무 짙고, 꽃의 여왕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도, 누군가 들고 있는 아무 꽃다발에서도. 난 그 언니를 보면 민들레가 생각난다. 그 언니가 웃으면 무장해제된다. 나는 노란 수선화를 좋아한다.
p104. 나는 탄소 대사를 하지 않는데도 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싶었어. 촉각이 거의 퇴화했는데도 얼굴과 목을 만져보고 싶었어. 들을 수 있는 음역이 아예 다른데도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우주를 건너올 만큼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내 사랑도 기꺼이 우주를 건너갈 수 있을 거다.
p120. 몇 퍼센트나 망설였을까. 그 망설임 중에 또 얼마가 한아에 대한 망설임이었을까.
입 안에서 ‘망설이다’라는 말을 굴려보니 문득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태도를 결정짓지 못하는 마음. 망설임 자체도 애정이 남아있어야 가능하구나. 어쨌든 생각도 하고, 결정을 내릴 때도 힘겨워 하니까. 왠지 슬프다.
p137. 내가 네 여행이잖아. 잊지 마.
박준 시인의 산문이 생각났다. 네가 내 여행이고, 내가 네 일상이 되었던가, 그 반대였던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여행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는다. 여행은 소중함을 알기 너무 쉬운데 일상은 그렇지 않다. 데이는 사람은 여행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군가 떠난 사람이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인지 누군가에게 일상이 되고 싶다. 그 전에는 내가 특별한 여행이 되고 싶어했는데,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너무나도 쉽지만 일상에서 여행을 택하기는 어렵다.
p143. “보고 싶어.” 그 말이 자연스럽게 새어 나왔다.
이건 최은영 작가의 <애쓰지 않아도>가 생각난다. 사랑은 굳이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보고 싶다는 말은 어디에나 펼쳐져 있는 사랑의 증거다.
p147.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맞다. 난 대신하고 싶어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었다.
p175. 경민이 부드럽게 한아를 껴안았다. 중요한 결정을 언제나 한아에게 맡겨주는 게 좋았다.
나도 내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방향타를 잡고 있어도 결국 바다가 허락해줘야 항해할 수 있더라.
p197.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한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하지 못했고 물론 경민은 그럼에도 모두 알아들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기 벅찬 마음이 들 때가 있다.
p204, 222. 떠나지 않았다면 내 평생이 모두 네 것이었을 거라는 잔인한 말 / 심장이 마지막 걸음을 할 때
항상 생각하고 있던 말, 예쁜 말. -
책은 도끼다(10th 리미티드 블랙 에디션) 출판 북하우스<책은 도끼다>_박웅현,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더보기
중고등학생 때 정말 간절하게 미디어커뮤니케이션과를 졸업해 광고기획자가 되는 것을 꿈꿨다. 이래저래 교대를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문득 그때의 꿈이 내 발목을 잡는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가려고 버스를 타려는데, 프레스센터가 즐비한 거리가 나왔다. 그곳은 내가 절대 발 디딜 수 없는 곳처럼 보였다. 창피한 마음에 신발만 바라보다 우산을 들어 앞을 보았는데, ‘Follow your heart’라는 문구가 거짓말처럼 눈 앞에 보였다. 찾아보니 1인 프로젝트였다. 그 문구 한 마디가 얼마나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는지 모른다.
고등학생 때 박웅현 CD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정말 재밌게 보았고, 언젠가는 나도 저런 광고기획자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교대에 오고 나서 일부러라도 그 생각은 안 하려고 했는데. 그 비 오는 북촌이 뭔지, 비 맞고 축 늘어진 능소화가 뭔지, 온통 회칠갑을 한 건물 속에서 고개를 수그러뜨린 주황색이 뭔지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빌렸다.
p47.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매일 보는 학교이고, 질리도록 봤을 바다인데 반복되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호수같다. 잔잔한 파도 정도가 아니라. 그래서 그 애는 항상 행복하다. 그 애는 일상을 감상할 줄 알아 풍요로운가 보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p79. 한 젊음을 늙히기에 저리도 힘듦이여! - 손종섭
한 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 번 훌쩍이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다. 슬픔마저 발랄하다. 대책없고, 충동적이고, 위태롭고, 무질서하다. 젊음은 과대평가된다고는 하지만, 난 젊기에 기꺼이 과대평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p109. 그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하는 거죠.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상대가 아니라 나예요. 내가 사랑의 이유가 되는 겁니다...... 결국 외로움이 시작인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이 이런 사랑을 한다는 겁니다.
내가 항상 하던 고민이다. 그래서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정이 떨어졌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그 사람 머리 속에서 상상한 내 모습을 좋아한다는 건지, 내가 그 모습에 맞춰주길 바라는 건지, 나를 소유하고 싶다는 건지. 그 감정의 뿌리는 내가 아니고 결국 자신일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내게 흥미가 식을 텐데. 하는 온갖 걱정들. 그럼 외로워지는 건 나일텐데 싶은 이기적인 마음들.
p115. 시릴 코널 리가 저널리즘은 한 번만 고민하는 것이요 문학은 다시 보는 것으로 정의한 데 따르면, 통조림은 저널리즘적(액체를 담은, 한번 쓰고 버릴 용기)이었다가, 워홀이 액자에 넣음으로써 문학 반열(벽에 진열하고 반복해서 관람하는 것)로 격상된 셈이었다. ...... 워호링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 놓아줬어요.
나는 예쁘다는 말에 굉장히 약하다. 누군가는 그냥 예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 사소한 이유들로 예쁘다고 해준다. 젓가락질을 바르게 한다든지, 발표를 잘한다든지, 손이 가지런하다든지. 내가 고마웠 것은 그 애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기 때문일거다.
p118. 우리의 판단은 바깥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광고의 기본이자, 삶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외 준비를 하면서 비슷한 글을 보았다. 내리는 결론은 모순적이게도 저 문장과는 반대다. 어떤 사람이 내가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면, 그 어떤 사람이 옳은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 파악을 해야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옳은 사람인지 그른 사람인지 파악을 하려면 내가 먼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야한다. 그래서 끝없는 순환논리에 빠진다는거다. 왠지 이 글이 떠올랐다.
p149. 자연은 한 번도 예술을 동경한 적 없다.
예술의 모태인 자연은 예술을 동경하지 않지만, 영화의 모태인 인간은 영화를 동경한다. 동시에 영화는 인간성을 동경한다. 신기하다.
‘해질녘 서편 하늘을 물들이는 장엄한 노을 앞에 섰거나, 한밤중 아득한 천공에서 무수히 쏟아져내리는 별무리의 합창을 들을 때, 혹은 동틀녘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는 황금빛 햇살의 광휘를 온몸에 맞으면서, 어느 누가 감히 예술을 논하겠는가.’
p153.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묘비명에 딱이다.-
P.153의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말을 보았을 때 가장 마음을 울리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이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집-운동 등... 이런 큰 틀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종강에 가보지 못한 나라를 가보려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교수학습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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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가 벌써 나온 지 10년이 되었군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독서 수행 평가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때 수행평가를 위해 대충 읽어서 그런지 지금은 \'책은 도끼다\'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네요 ㅎㅎ 그것과는 별개로 ㅁㅈ님의 서평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이 떨어진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공감이 갔습니다. 어차피 나는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이 아니니 언젠가는 실망하게 될 건데 굳이 사귀면서 고난과 역경까지 겪어야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혼자서 철벽을 치고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 같아요. ㅁㅈ님에게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라는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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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급 한국어(오늘의 젊은 작가 30)(양장본 HardCover) 출판 민음사작가와 주인공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그래서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로 읽혔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삶과 닮아있지만 달라서다. 그래서 삶을 닮은 게 아니라 옮겨 담은 수필을 잘 읽지 않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아 작가의 일기를 읽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불편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게 언제부턴가 버거워졌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누굴 만났는지 기억도 못하게 되고, 어떤 일을 겪었나, 어느 시간을 지나면서 설레었고 어느 시간을 지나면서 화를 냈는지, 이걸 떠올리는 일조차 지겨워졌다. 물론 나는 이 작가를 평생 만날 일도 없고, 다시 이 책을 읽을 일도 없겠지마는 너무도 현실적인 삶의 짐이 느껴져서 거부감이 든다. 사실 문지혁이 살고 있는 삶을 내가 언젠가는, 어렴풋이 좇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 짐을 풀어 보여 내 아메리칸 드림을 깨버린 이 책이 밉기도 하다(미국은 아니지만 어쨌든 외국이니까).더보기
p127.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세 가지 단어로 구분했다. 아이온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무한하고 신성하고 영원한 시간, 그러므로 신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양적이고 균질한 시간,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며 무의미한 시간,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이다. 마지막 카이로스는 ᅟᅵᆯ적이고 특별한 시간, 구별되고 이질적이며 의미를 지닌 시간, 말하자면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아이온에 둘러싸인 채 크로노스 속을 살아가는 존재다. 무심하지만 규칙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감옥의 죄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카이로스가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화살이 날아가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전과 이후가 갈라지고, 한번 일어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따라서 시간을 묻는 방법은 두 가지여야만 한다. 1. 크로노스를 물을 때: 지금 몇 시예요? 2. 카이로스를 물을 때: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얼마 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원에 다녀왔다.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내 삶이 내 마음에 드는 순간, 불행이 닥쳐올 것만 같은 느낌에 너무 초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 탈선으로 기차가 한참이나 지연되어 정말로 불안이 찾아왔지만, 언니들은 내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플랫폼에서 기다려주고, 안심시켜주고, 다른 대책을 찾아주고, 우리 막내 밥 못 먹을까 걱정된다며 보듬어주었다. 이 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시간은 내 카이로스가 되었다.
비슷하게 만나기만 하면 모든 크로노스가 카이로스로 변하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너무 의지한 나머지 내가 나를 잃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무섭다. 누가 없거나 하루라도 못 보면 우울하다. 확인받으려고 하고, 마음을 의심한다. 분명 누군가도 지칠 걸 아는데 말이다. 내가 나를 잡아먹는다는 걸 안다.
p166. 은혜가 틀렸다. 서울의 시간은 뉴욕보다 늦지 않다. 오히려 열세 시간이나 빠르다.
서울은 뉴욕의 미래다.
내 시간을 믿지 말자. 내 시간이 그 애의 시간보다 뒤쳐진 게 아니다.
p184. 나는 소설이 꾸며 낸 이야기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을 반영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소설은 삶보다 작지 않고, 소설이 삶에 속한 게 아니라 삶이야말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소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우주와 영원이 써 내려가는 거대한 소설의 일부임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소설을 쓴다는 건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저 위에 말에 내가 문득 얼마 전 일이 떠올랐는지, 왜 소설이 불편했는지를 알았다.-
저도 수필을 참 좋아해요. 그 이유는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었기 떄문이에요. 수필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그게 또 매력인거 같아요. 너무 현실적인 삶의 짐이라고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그 느낌이 정말 궁금하네요.. 한번쯤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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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밤하늘 에디션) 출판 복복서가책 모임에서는 모임을 마무리 지을 때마다 ‘책 장례식’이라는 것을 한다. 한 번 읽은 책은 웬만하면 다시 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마음에 들었던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장례식을 치러주지 못하겠다. 책을 읽으면서도 문장 하나하나를 몇 번씩 곱씹어 읽었다. 몇 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을 때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해지는 책이다.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네 권 째 읽는 중인데, 읽을 때마다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는지 놀라울 정도다.더보기
p99.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나’의 기원을 곱씹어 보는 문장으로 읽히다가도, 인간 관계에 얽힌 진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결합하게 되었는가. 나는 너를 마주하며 어떤 의식의 체계를 재정립하는가. 내 일부가 너를 만나 어떻게 변화하며 날 어떻게 의식하게 되었는가. 선이가 민이에게 이 말을 건넬 때, 어떤 인간보다도 온전하다고 하는 말이 슬프면서도 따뜻해서 여러 번 읽었다.
p135.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우린 유약해서. 너무 작고도 깊은 존재여서.
p135.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장면을 거듭하여 되돌려보곤 했다.
아직 철이가 인간이라고 여겨질 때다. 이 문장에서 철이가 인간이 아님을 확신했다. 저건 기계가 테이프를 되감을 때나 쓰는 말 같다.
이 소설은 여느 SF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사실 김초엽 작가가 SF로 각광받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맥락이 부족한 자극적인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연륜이 부족해 읽으면서 책을 음미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작별인사>는 다르다.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들고, 주인공의 정체에 혼란을 주어 내 존재 자체에도 의문을 갖게 만든다. 기계의 입장이 되었다가 인간의 입장이 되었다가. 그 시점을 달리하는 것이 매번 새롭고 즐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책이 너무 반가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별로 사건이 시작하는 것도 좋았다. 아빠와의 작별, 나를 억압하던 것들로의 작별, 소중한 이들과의 작별. 이러한 것들은 예고 없이 찾아왔지만 선이와 철이의 작별은 예정되어 있었다. 만날 때 안녕, 헤어질 때 안녕- 하는 것처럼 작별을 하기 위해 선이를 만나러 간 게 좋았다. 만남의 안녕도, 헤어짐의 안녕도 모두 작별인사였다. 제목의 작별인사는, 정말로는,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p222.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우리가 그전에, 그러니까 내가 나라는 것을 알고, 네가 너라는 것을 잊지 않았을 때,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날 것만 같아.
나는 창피하게도, 가끔 내가 나인 것을 잊어버린다. 오만하게도, 누군가 내가 누구인지를 나보다 더 잘 알아줬으면 한다. 어쨌든 주인공들은 끝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선이의 이 말이 철이를 생애, 그러니까 인간-휴머노이드-인공지능의 모든 과정을 보듬어주는 말 같다.
p268.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죽음을 직시하도록 노력하는 것 같다. 외람된 말이긴 한데, 아무리 내가 절벽 끝까지 내몰려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그 최후의 보루가 원동력이 된다.
p275.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내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이유를 이렇게 멋지게 설명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누군가 내게 책 읽는 게 재밌냐고 물어보면 내가 하지 못한 경험들을 간접적으로나마 할 수 있어서라고 답한다. 내가 읽는 소설 속 가짜 사건들을 보고 드는 모든 감정들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허무맹랑하더라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도서실 맨 끝 왼쪽 책장에 꽂혀있던 <프린세스의 천일책> 생각이 났다. 제목이 좀 그렇긴 한데, 신분의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일개 시녀의 모험이 담겨있다. 다른 장면은 모르겠고 탑에 갇힌 공주를 먹여 살리기 위해 굳은 요거트를 녹여 물에 타 주던 장면, 늑대 족장 앞에 용감하게 나서서 공주를 지키려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선이를 보고 이 시녀가 떠오른 것 같다.-
저도 엄청 공감을 하는게 김영하 작가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 읽을 때마다 같은 작가가 썼는지 놀라워서 가끔씩은 잊고 그냥 읽기도 하고 있어요. 이 책은 선물받아서 읽고 있는중인데 한번 읽은 책은 웬만하면 다시 펼칠일이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가요. 저도 좋아하던 책은 2~3번씩 읽으면서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을 즐기곤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는데 아쉽긴하네요. 김영하 작가의 책들은 너무 좋은거 같아요. 추천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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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출판 아작원래 SF 류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며 오랜만에 문학계가 들썩이는 흐름에 나도 슬쩍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내가 여지껏 읽은 한국 SF 소설 중 단연 최고다. 대개는 자신이 외면하고 싶은 부분이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을 투영하는 소설은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의 흠결은 나와 닮았음에도, 모두가 쓸쓸하고 외로워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맞게 되는 파국이 즐겁다. 작가가 건네는 말들은 날카롭고 아프지만, 그렇기에 위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차갑다. 차가운 이들에게 갑자기 뜨거운 손을 가져다 대면 놀라 몸을 더욱 움츠린다. 그렇지만 같은 온도의 손길이 닿으면 안정감이 든다. 설령 그게 차가워도,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날선 이야기로 위로를 건네는 이 책이 너무 좋다.더보기
p57.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듯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이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냥 철없는 중학생의 사춘기 투정으로 보이지만(실제로는 인간 배설물 덩어리다.), 난 절대 웃을 수 없었다. 물론 내 부모님은 나를 돌보아 주시지만, 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나보니 그냥 그 사람들이 내 부모였던 거고, 태어나보니 내가 그들의 딸이었던거다. 내가 이들과 인연이 맺어져 평생을 함께하게 된 것은 같은 핏줄이라는 것. 그거 하나 뿐이다. 나는 그래서 항상 가족이라는 게 낯설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딸’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들의 딸이 아니라면 인정받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을 거다. 물론 그들이 나를 사랑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내 부모는 나를 선택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나를 언제든지 내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연을 끊기 어렵기도 하다. 반면 부부는 남이었던 서로를 선택한다. 남에서 고작 점 하나를 빼서 님이라 여기며 평생을 함께한다. 점 하나로 갈린 운명인데, 거기에 묶여 평생을 함께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따금 우습다. 무튼, 극단적으로 봤을 때, 나는 그들의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만약 자신의 배우자나, 나를 죽을 위기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사랑의 부산물일 뿐인 내가 내쳐질 것이다. 나는 선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116. 그러게 애 아빠를 빨리 찾으라고 그랬잖아요. 남성 배우자도 없이 저 혼자 크게 내버려 두니까 결국 그렇게 된 거라고요.
여자의 홀몸에서 태어난 아기는 핏덩이가 되어 사라진다. 그렇지만 모든 인간은 그렇지 않다. 여자와 남자의 결합으로 아기가 생긴다. 그러니까 부모 중 하나 없이 크는 건, 혹은 혼자 크는 건 ‘결국 그렇게 되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사라지는 건 없다’라며 이 소설을 읽는 누군가에게 서슬퍼런 말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 했다.
p143. 1호가 다시 한 번 속삭였다. 안녕, 내 사랑.
설령 그 사건이 가짜여도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진짜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거다. 가짜인 걸 알지만 서도 내 감정의 파동을 느껴, 나는 고장나지 않았다, 여전히 이 모든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들을 증명하기 위해 그러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가 로봇을 사랑해, 그를 위해 한 일이 로봇에게는 그저 자신을 폐기처분 하는 그 ‘사실’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나보다. 로봇에게 사랑이란 그냥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가짜니까. 인간의 모든 감정이 진짜인 것과는 달리.
p230. 그리고 마침내 눈물이 멈추었을 때,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그는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야지. 몇 년 전에, 친구가 노무현 대통령님이 하셨던 말을 들려주며 나에게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같은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문득 이 문장을 읽으니 그 얘기가 생각났다. 물론 내가 이 소년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선다. 동쪽으로 흐르면, 다시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한 번 밀려가면 다시 밀려오는 파도처럼.
p287. 그 순간 물고기는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모래를 박차고 사막의 차가운 밤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별이 점점이 박힌 남빛 하늘 속으로 거대한 물고기가 뛰어드는 순간 유리처럼 맑은 밤하늘이 갈라지는 굉음을 공주는 분명하게 들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p293. 태양과 달이 부서져 사라지는 날까지, 별과 구름이 손에 잡히는 이 무한한 공간이 모두 공주의 것이다.
태양과 달이 부서져 사라지는 날까지, 별과 구름이 손에 잡히는 이 무한한 마음을 주고 싶다고 얘기해줄 사람.
p305.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이 문장은 덤덤하다. 자신의 모든 순간을 제 3자처럼 바라보기에 할 수 있는 말 같다. 얼마나 인생에 미련이 없으면 이런 말을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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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출판 문예출판사대체 이게 왜 그 시절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굉장히 파격적인 소설인 것은 맞지만 고전이라고 추앙받을 정도의 것이냐고 한다면, 글쎄다. 가장 악랄하다고 불리는 미국 범죄자들의 가방 속에서 나온 책이라서 그런가. 유명한 걸로 유명한 책인 것 같다. 내겐 그저 멋모르는 청소년판 인간 실격으로 여겨졌다. 심통난 사춘기 청소년이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이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꿈꾼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호밀밭에서 아이들로 대표되는 순수함을 지키려는 꿈은 이상적인 허상일 뿐이다. 이 책에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이랑 얘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원제는 <The Catcher in the Rye>이다. Catcher를 파수꾼으로 번역했지만 말 그대로 호밀밭 바깥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잡는’ 역할 인거다. ‘Holden’이라는 이름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이런 부분은 흥미롭다. p121.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여자는 바로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여자다.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그래서 내 연애의 끝은 이런가보다.더보기
p130. 저런 백치같은 것들이 나를 굉장하다고 인정할 때 나는 그들을 증오하리라. 그들이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싫다.
내가 어릴 때 항상 똑같은 생각을 했다. 위선과 교만과 아집에 가득 찬 거다. 지금은 어떤 형태의 관심도 좋다.
p182. 그러나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것은 모든 것이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보다 책이 좋을 때가 있다. 사람은 너무나도 가변적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가변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대로인 책을 읽을 때 마다 감상이 변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p199. 대학에 간 다음에는 멋진 곳에 갈 수 없어진다고 말했어. 사정이 판이하게 달라질 거라고. 우리는 여행 가방 같은 걸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거야. 나는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회사에 출근하고, 신문을 읽든지 밤낮 브리지 놀이를 하든지.......
이래서 교대에 오기 싫었다. 틀에 박힌 일상을 영위하며 사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어쩌겠느냐. 이미 와서 절반을 해낸걸. 차선의 길을 찾아보면 된다.
p255. 사람들은 실제적인 것을 실제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거든.
홀든이 말하는 실제적인 것이란, 사랑과 정의와 같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준 어떠한 것들일 것이다. 사랑을 할 때도 그 사랑을 항상 확인받고 싶어했다. 내겐 실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서.
p276. 지금 네가 뛰어들고 있는 타락은 일종의 특수한 타락인데, 그건 무서운 거다. 타락해가는 인간에게는 감촉할 수 있다든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바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본인은 자꾸 타락해가기만 할 뿐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밑바닥에 있고, 고개를 들어보니 우물의 입구가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면 어떨까. 사실 지금 기분이 그렇다. 내 잘못이 아닌 걸 아는데 자책하고 자기혐오만 가득하다. 적당히 해야하는데. 내가 나 스스로를 타락으로 끌고 가는 기분이다.
p277.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앞 말은 잘 알겠다. 지금 내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숙한 인간은 왜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걸까. 너무 성숙해서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고 주류에 편승하기 때문일까? 성숙해져서, 아는 게 많아져서 별 게 다 겁나기 때문일까?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