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단 하루도 지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베릴 마크햄(beryl markham)
부끄럽지만 나는 영어 원서 책을 읽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냥 장편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도 힘이 드는데, 영어 원서로 읽다 보면 내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기에 지금 소개할 ‘west with the night'는 내가 몰입해서 읽은 첫 영어원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접한 것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골목 깊숙한 곳의 조그만 카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을 전혀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 다행히 경보단계가 낮아져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 얼굴을 보기로 한 올해 여름방학 중의 일이다.
인적 드문 골목에서 카페를 찾아 들어갔는데, 친구와 나 이외에는 손님이 없어서 조금 자유로운 마음으로 카페 구석구석 장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카페 곳곳에는 예쁘게 인화된 외국 여행사진과 영어 원서 책을 장식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몇몇 테이블 위에도 장식용인지 영어 원서 책이 올려져있었다. 이 ‘west with the night'도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영어 원서였다. 친구는 카페 여기저기에서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시킨 메뉴를 기다리며 무슨 마음에선지 테이블 위에 있던 영어원서를 펼쳐보았다.
부끄럽게도 짧은 영어실력에 모든 내용을 빠르게 훅훅 넘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뜨문뜨문 배운 영어로 어렵사리 책을 한줄 한줄 읽어갔다. 심지어는 페이지가 많다 보니 카페에 앉은 시간 동안 그 책을 완독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중간부터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작위로 펼친 페이지에서 읽은 내용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다.
이 책은 ‘베릴 마크햄(beryl markham)’이 자신의 도전과 여정을 담은 책이다. 베릴 마크햄은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다. 그녀는 영국 레스터셔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아버지와 ‘아프리카 케냐’로 이주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농장 일을 하는 것 외에 더 넓은 세상을 살고 싶어서 가방을 지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 이후 몰로에서 여성 최초로 경주마 조련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약체의 말을 우승으로 이끌며 단순히 18살짜리 여자애라는 편견을 깨며 도전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조종사’가 되어 대서양을 서쪽으로 단독 비행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
베릴 마크햄의 얘기 중 내 뇌리에 뚜렷하게 박힌 것이 있다. “우리의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한 것이기에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에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그러나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
나는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이 두렵다. 안전할 것이라 예상되고, 누구나 다 가는 길만 걷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결말이 예상되어야만 도전하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안정된 것을 버리고 결말이 예상되지 않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눈앞에 두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이 문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줬는지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도전함에 있어 과거가 더 좋았던 것만 같고, 차라리 늘 예전에 했던 대로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지만 베릴 마크햄은 비록 구름 속에 미래가 감춰져 있더라도 그 구름은 다가가는 순간 걷힐 것이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 속에 묻혀 그 기억 속에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과거 속에서만 살지 말라고 얘기해준 이 책의 문구가, 나를 얼마나 위로해주고 북돋아줬는지는 리뷰 안에서 다 담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잊고 있었는데, 이번 북토크 활동을 하며 기억 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던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나는 영어 원서로 읽었긴 하지만, 찾아보니 'west with the night'라는 책은 ‘이 밤과 서쪽으로’라는 제목으로 영어원문이 잘 번역되어 나온 책이 존재한다. 나는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나중에 번역본으로도 읽을 생각인데, 그럼에도 맨 처음 이 책을 영어 원서로 접하며 영어를 직접 해석하며 느꼈던 감동이 엄청나기에 영어원서로 읽는 것도 정말정말 추천한다.
-
West With the Night 출판 Farrar Straus & Giroux
- 2 people 좋아요 님이 좋아합니다.
-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엄청난 도전임을 알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ㅎㅎ 저도 도전이 두려워서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아요. 안정을 추구하다보니 발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더라구요. 원서를 읽는 것부터 조금씩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리뷰 감사드려요!
-
인용해주신 문장이 제 마음에 훅 들어오네요. 저는 과거를 유난히 그리워하고 향수를 느끼는 편이에요. 분명 그때에도 그때만의 힘듦이 있었을 텐데, 지나간 시간들이 왜 이리도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더 애틋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이미 죽은 시간 대신 구름 속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을 향해 나아가야겠네요. 새싹이님의 추천대로 꼭 영어 원서로 읽어볼게요!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