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4판)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출판 까치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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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오해 <공적 영역>

    어떤 이는 '군주론'을 '악마의 책' 이라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조금 아는 이는 '마키아벨리즘' 을 떠올리며 군주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달성하라고 가르치는 책으로 알고 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고전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이상적인 정치사상에서 벗어나서 유럽 최초로 현실 정치사상을 부르짖은 고전으로 평가한다.

    마키아벨리는 16세기 이탈리아 사람이다. 공직에 진출하여 여러 나라와 관직을 경험한 그는 항상 고전을 곁에 두고 살았다. 언제나 고전에서 교훈을 얻고 현시대를 과거와 비교하여 해결점을 찾으려는 인물이었다.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군주의 목표와 처세를 말한 책이 『군주론』이다. 그런데 왜 한 책에 대해 이렇게나 평가가 엇갈리는 걸까? 무엇보다, 한쪽에서 '악마의 책'이라며 비난하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일까?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대상이 정말 중요하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사악한 수단을 써서라도 실행하라고 이야기한다. 만약 누군가가 평소에 이 말을 신봉하고 실천하고 다닌다면 금세 사회는 더러운 술수와 범죄로 얼룩지고 말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당시 역사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이 단락만을 읽었다면 십중팔구 오해하기 쉬운 문장이다. 도덕과 정의를 중시하는 지금, '옳지 않은 수단'도 사용하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은 '악마의 말'로 들린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이탈리아는 그 당시 약소국이었다. 주변에 굵직한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서로의 힘을 자랑하는 반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이탈리아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힘과 견제'와 '믿음과 약속'보다 강력한 시대에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윤리적인 규칙은 무시하기 쉬운 '룰'이었다. 이러한 폭력과 격정의 시대를 눈과 발로 직접 체험한 마키아벨리는 고전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윤리적이고 이상적인 정치사상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영역, 즉 개인은 정의와 도덕을 중시하고 약속을 지키며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올바르나 공적인 영역, 냉철한 힘의 세계인 정치 현실에서는 윤리가 1순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고, 강력한 힘의 균형 속에서 실속을 챙기고 힘을 길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강자에게 잡아먹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공적인 영역에 한해서" 목적을 위해서 사악한 수단도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이다. 고전적 정치철학을 따를 경우 아무리 목적이 선하고 공적일지라도 수단이 비윤리적이라면 배타되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것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상 정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는 철저하게 다르기 때문에 지금 여기, 현실에 맞는 정치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군주에게 비윤리적으로 살라고 조언한 것은 아니다. 정직함, 겸손함, 경건함 등의 통상적인 사적 윤리를 염두에 두되 "필요하다면" 악의 가면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적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의 비윤리화를 금지한다. 그는 '목적'이 철저히 공익적인 성격을 가질 때에만 허용된다고 강조한다. 만약 단지 군주 개인의 유흥을 위해, 자기세력의 출세를 위해 사악한 수단을 사용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목적이 충분히 국가의 발전, 사회의 안정 등 공공적이라야 수단의 뒤틀림도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4-500년이 지난 지금 올바르지 못한 목적과 사악한 수단의 실현은 공공연한 현실로 자리매김했다.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 본 그의 혜안에 감탄만 나올 뿐이다.



    2. 운명(fortuna)와 덕(virtu)

    • 현명한 군주라면 항상 이와 같이 행동하며, 평화 시에도 결코 나태하지 않고,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부지런히 자신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역경에 처할 때를 대비합니다. 그 결과 운명이 변하더라도 그는 운명에 맞설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저는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 방식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운명은 여성이므로 그녀는 항상 청년들에게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고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군주론이라고 해서 군주(현대로 치면 대통령, 총리 등)에게만 유익하지는 않다. 책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그의 풍부한 경험과 고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통찰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유덕하더라도 운명이 돕지 않는다면 실패할 것이고, 유덕하지 않더라도 운명이 돕는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 말에 대해 누군가는 "어떤 노력도 할 필요 없다! 어차피 운명의 장난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 나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이미 이러한 반론을 의식하고 이야기한다.

    운명이란 비유하자면 자연재해와 같다. 한 번 불어닥치면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재해인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당하기만 하면 그는 미련한 사람이다. 평화로울 때 궁리해서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한다면 막상 재해가 불어닥쳐도 대비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안전할 것이다. 운명도 이와 같다. 열심히 노력하고 행동하는 이는 운명의 힘이 닥쳤을 때 순풍을 받아 더욱 멀리 날아갈 수도 있고 재앙의 홍수가 들이닥쳐도 댐을 마련하여 운명의 장난을 넘겨낼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유덕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자보다 성공에 이르기 더욱 수월할 것이다. 즉 단호하고 용감하며, 사려 깊고 충직하며, 신의 있는 사람이 운명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모든 덕을 갖추고 있으랴. 때로는 없는 덕도 있는 '척'하는 것이 훌륭한 방법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이야기한다.

    나는 평소에 실재만을 중시한 나머지 외양과 치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진실한 마음이 어느 상황에건 오해 없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지 않을까? 자신의 본질을 가슴 깊이 새겨둔 채 상황과 때에 맞춰 적절히 외양을 꾸미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어느 상황에 건 유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적응하는 것이다. 자신의 본질만을 들이밀며 수용을 강요하는 것, 자칫 용감하게 비칠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3. 인간에 대한 통찰

    •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은 쉽게 잊어도 재산의 상실은 좀처럼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합니다.



    • 인간이란 너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활동에 만족하고 자기 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란 지극히 어렵습니다.



    • 날씨가 좋을 때 폭풍을 예상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약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나와 상반된 인간론을 지녔다. 인간은 믿을 만하지 못하고, 배은망덕하며, 치사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저마다 천방지축인 인간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건 아닐까? 적절한 융통성과 관찰을 발휘하여 세상을 하나의 안경으로 보려 하기보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 지금까지 나는 인간을 너무나 전적으로 신뢰해온 것이 아닐까? 나를 포함해서 인간은 100% 선한 사람도, 100% 악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이기적인 마음, 도와주고 싶은 생각, 성질부리고 싶은 충동 등 모순적인 감정을 하나의 마음에 가지고 있다. 그중 한 가지만을 핀셋으로 떠서 관찰하고 실험하다가는 다른 부분을 잊고 말 것이다.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보다는 잊지 않음으로써 내 안의 악한 감정을 누르고 다른 사람의 악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이 기술을 익힘으로써 세상과의 진실한 감정과 의견 교환이 수월해질 것이다.

    •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과 '결코 존재한 것으로 알려지거나 목격된 적이 없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에 대한 유명한 구분을 하고 있다. 이 구분에는 이전의 도덕철학자나 정치철학자들이 이제껏 전적으로 가상의 공화국이나 군주국에 관해서만 논의했을 뿐이고 군주가 실제로 활동해야 하는 현실의 세계에 관해서는 아무런 지침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내포되어 있다.



    •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인 사상은 영광과 권력을 추구하는 군주에게 단순히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규범에 구애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나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했다. 정치행위의 원리로서 도덕적인 원리를 추방한 것은 정치행위의 비도덕성(amorality)을 암시하는 것이었지만, 또한 정념에 따른 행위를 배제하고 합리적이며 계산적인 이익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정치행위가 일정한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 가능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에게 전적으로 '이상'이라는 옷을 입히는 게 가능할까? 끊임없이 대결하는 이성과 욕망의 싸움에서 때때로 우리는 승리하기도, 엎드려 굴복하기도 한다. 양쪽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라본다면 왜곡된 관점으로 말미암아 오해와 편견을 낳고 말 것이다.

    군주론을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목숨 끝날 때까지 꿈을 그리고 '이상'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꿈에서 눈을 떠 집 밖을 나섰을 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그는 '공상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현실에 젖어 있기만 한다면 진보와 기적의 아름다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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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론을 읽어보셨군요. 저는 이 책을 읽었을 때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공포 정치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믿음과 신뢰보다 공포로 체제가 더 안전하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런 점에서 존재님과 저의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군주론을 다시 한번 읽어볼 기회가 있다면,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다시 한번 책을 이해해보고 싶네요.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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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군주론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이러한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도 책을 읽는 내내 했구요. 사실 공포 정치는 언제까지고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즉각적이고 강한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 인 것 같습니다. 진시황, 히틀러 등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로 돌아보면요. 아마 악마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히틀러가 마키아밸리의 광팬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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