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동양과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본성과 본능의 관점으로 바라본 내용을 정리했다. 다양한 사상가의 생각이 잘 정리돼있는 것은 물론 그에 대한 저자의 유교적 관점을 제시한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인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내용이 방대해 책 전체를 소개할 수는 없고 그 중 홉스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 내 생각을 써보겠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악하고 자기보존 욕구가 우선이며 객관적 도덕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만들고 법을 제정해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이성은 정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홉스는 자연권을 ‘자신에게 좋은 것을 욕망하고 나쁜 것을 회피할 수 있는 자유’이라 정의하고 자연법을 ‘자연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이라 말했다. 그런데 자연법의 ‘자연’과 자연권의 ‘자연’은 의미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 홉스는 ‘자연권’을 말할 때에는 ‘생존 본능’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했고, ‘자연법’을 말할 때는 ‘이성’을 ‘인간의 자연’으로 이야기했다. 즉 법이 없는 무정부 상황에서는 자연권을 지닌 인간이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투쟁하지만 일단 법과 질서가 정해지게 되면 이성을 통해 자연법을 준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홉스에 관한 비판에 대한 의견:
355p 중간 단락을 보면 책은 홉스의 ‘자연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자연상태에서의 강탈과 약탈은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인가?
2. 사회상태에서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은 분야’도 자연상태라고 본다면 이 영역에서 강탈과 약탈도 정당한 것인가?
이에 대해 내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첫번째 질문에 대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겠다. 강탈과 약탈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 정당할 수 있다고? 그렇다. ‘자연상태’에서 말이다. 홉스가 이야기한 자연 상태는 법도 국가도 탄생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이다. 문명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며 인류 공통의 관념, 철학,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의 세계를 살펴보면, 힘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잡아먹는 건 당연한 이치라는 걸 알 수 있다. 호랑이는 토끼보다 몸집이 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기에 손쉽게 토끼를 사냥할 수 있다. 우리가 잡아먹히는 토끼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순 있어도 누구도 자연의 법칙이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순수한 법칙 그 자체에는 도덕이 끼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 상태의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이성 능력을 가진 도덕적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은 문명이 발달해 모두가 생각을 나눌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법과 정치, 경제, 문화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없다. 단지 한 종의 동물로서 지구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보편적 도덕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도덕 법칙을 논증하고 증명할 기구도, 기관도, 장소도, 집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 상태의 도덕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할 수 없다. 홉스의 설명에 말마따나 서로간의 폭력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기 위해 국가를 설립하는 순간부터 도덕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전은 원시인의 삶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위와 결이 다르다. 현대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법과 정의는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항상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즘 많이 논의되고 있는 가상 화폐의 경우 가상 화폐 발행자가 명백한 사기 행위를 이용자에게 저질렀어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그는 처벌 받을 수 없다. 그래서 가상 화폐 이용자들은 실질 정책과 법이 제정될 때까지 스스로 조심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은 분명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에게 사법 집행 기구가 있느냐의 차이다. 먼저 언급한 ‘자연 상태’의 경우, 국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통의 목적을 향한 집단이 완성될 수 없고, 설사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방향성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새로운 사회 영역의 ‘자연 상태’의 경우 이미 국가와 법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새로운 영역이다. 그 영역에 있는 구성원들 모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를 교육 받았고 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인 법 규정이 정해지지 않아 처벌을 할 수 없을 뿐, 다른 영역에서 똑같이 행동하면 처벌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영역에서 강탈과 약탈 같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법이 제정되지 않았을 뿐, 정의의 질서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고 공권력이 그것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표현하였다. 인간의 악한 본성에 초점을 맞춰 국가와 같은 거대 권력과 법이 없다면 갈등과 투쟁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투쟁을 벌이는 이유는 아직 법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집행할 기관이 대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홉스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동의할지 말지를 정하는 건 자유이나 자연 상태의 폭력에 대한 홉스의 생각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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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과 본능(양장본 HardCover) 출판 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