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고 생각했다. 맹자의 성선설과 대비되는 주장이다. 그래서 순자는 예(禮)를 강조하였다. 사람의 악한 본성을 예로 다스려 사회를 안정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훌륭한 국가란 사회 구성원이 예를 자각해 자신의 본분에 맞게 일을 하며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전이 으레 그렇듯 『순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르침이 있는 한편, 시대의 한계에 가로막힌 주장이 있었다. “흙이 쌓여 산이 이룩되면 바람과 비가 일게 된다. 물이 모여 못이 이룩되면 교룡과 용이 생겨나게 된다. 선함이 쌓여 덕이 이룩되면 자연히 귀신 같은 총명함을 얻게 되고 성스러운 마음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반걸음이 쌓이지 않으면 천리길을 갈 수 없고, 작은 흐름이 쌓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가 이룩될 수 없는 것이다. 천리마도 한 번 뛰어 열 걸음을 갈 수 없고, 둔한 말도 열 배의 시간과 힘을 들여 수레를 끌면 천리마를 따를 수 있다. 공이 이룩되는 것은 중단하지 않는 데 달려 있다. 칼로 자르다 중단하면 썩은 나무라도 자를 수 없으며, 중단하지 않으면 쇠나 돌이라도 자를 수 있다. (…) 그러므로 군자는 한결같이 단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勸學(학문을 권함), 5
-군자의 길을 걷는 선비에게 꾸준한 학문의 중요성을 전하는 구절이다. 어떤 일이든지 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의미 있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분야의 대가들은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을 만들었다(예를 들어 김연아, 손흥민, BTS...가 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천리마가 되면 좋겠지만 둔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순자가 이야기하듯 ‘둔한 말도 열 배의 시간과 힘을 들여 수레를 끌면 천리마를 따를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어떻게 갈 것인지 결정하는 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격의 도야를 위해 정진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유가에서 제시하는 군자(君子)는 훌륭한 인간상의 표본이다. <순자>뿐만 아니라 <대학/중용>, <논어>, <맹자> 등 유가 정통 고전에서 언급하는 군자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군자는 너그럽지만 태만하지 않고, 모가 나지만 사람을 손상치 않으며, 말은 잘하지만 다투지 않고, 잘 살펴 알지만 지나치지 않으며, 바르게 서 있기는 하지만 남을 이기려 들지 않고, 굳고 강하기는 하지만 포악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종순하지만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공경스럽고 조신하지만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이러한 것을 두고 지극히 문아(文雅)하다고 한다” -不苟(구차한 짓을 하지 말라), 4
-검증된 고전일수록 더욱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유가에서 제시하는 군자가 되기 위해선 <시경>, <서경> 등 옛 글을 교과서로 삼으며 매일 외우고 공부해야 한다. 옛 것과 옛 사람을 본으로 삼고 예에 맞게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전통을 돌아보고 배울 점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을 공경하는 한편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따르는 것은 사고의 한계에 갇힐 가능성을 열어둔다. 현 시대는 옛 선인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서 만들어야 한다.
유교는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유교의 전통 가치를 따르는 동양 사회에서 대체로 인정되는 덕목이다. 어느 인간이 “나 잘났다”며 떠들고 다니면 아니꼽게 보이는 게 우리의 문화 아니겠는가? 칭찬을 하거나 양보해도 “아닙니다”라고 손사레를 치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겸손이 전통 사회에선 큰 미덕일 수 있었으나 현대까지 그 중요성이 이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각자의 개성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가 중요해지고 있다. 잘한 것에 대해선 잘한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런 풍조가 많이 지워지는 것 같다. 성공한 래퍼가 자랑을 하면 ‘그럴 만하지’라며 수긍하며 리스펙을 보내니까. 20년 전 한국 사회에서 그런 종류의 노래를 발표했다간 여론의 뭇매를 흠씬 맞았을 것이다..
오만함을 경계하되 훌륭한 성과에 대해선 모두가 인정하고 스스로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수 조영남 씨가 ‘겸손은 힘들어’라고 했던가? 겸손은 여전히 권장되는 덕목이지만 지나친 겸손은 독이 될 수 있다.
“사양하는 예절이 잘 지켜지고, 어른과 아이들의 도리가 순조로이 지켜지며, 꺼려야 할 말은 하지 않고, 해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어진 마음으로 논설을 하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들어야 하며, 공정한 마음으로 그 내용을 분별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의 비난이나 칭찬에 동요되지 않고, 보는 이들의 귀나 눈을 미혹시키지 말아야 한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권세를 사려 들지 말아야 하며, 편벽된 사실을 전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에 처신해 다른 길을 돌보지 않고, 어려움에 처해도 뜻을 빼앗기지 않으며, 순리할 때에도 빗나가지 않는다. 공정함을 귀하게 여기고 비루하게 다투는 것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이 선비와 군자로서의 변설이다.
『시경』에 ‘긴긴 밤은 샐 줄 모르는데, 곰곰이 자기 잘못만 생각하네. 태고적 일이라 하여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예의에 어긋남이 없는데, 어찌 남들이 하는 말 걱정하랴!”고 읊은 것도, 이것을 뜻하는 말이다.“
적절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고전을 바라볼 때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