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다시 계몽(사이언스 클래식 37)(양장본 Hardcover) 작가 스티븐 핑커 출판 사이언스북스 가루루 중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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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철저한 이성을 바탕으로 ‘진보’에 대해 광범위하게 고찰한 책이다. 인류의 발전 양상, 진보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을 수학과 과학, 심리학을 이용해 풀어낸다. 단, 오해하지 말라! 차가운 이성을 사용했으니 따뜻한 감성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이성, 철학, 종교, 과학, 사회를 톺아보며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우리는 분명 조상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개선된 조건에서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너무 낙관적인 이야기로 들리는가? 그러나 이것은 저자의 공상이 아니다. 통계와 수치, 그래프는 삶이 객관적으로 나아졌음을 증명한다. 누군가는 ‘단군 이래 가장 불행한 세대’라며 현대인의 행복감이 크지 않음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도 상승하고 있다고 통계는 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과거보다 행복해졌으며 안전하고, 윤택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절대 빈곤에 시달렸다. 수렵 채집 시기부터 시작해 농경 생활을 할 때까지도 삼시세끼를 풍족하게 먹는다는 건 손에 꼽을 일이었다. 식량 생산의 효율성이 무척이나 떨어졌기 때문에 소수의 계층을 제외하곤 모두 ‘오늘 뭐 먹어야 할지’를 매일 고민해야 했다. 부모는 태어날 아기가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유아 사망률은 40%를 육박했으니 말이다. 1700년도부터 작성된 통계를 살펴보면 산모의 사망률은 1%에서 시작해 서서히 떨어지는 곡선 그래프를 취하고 있다. 분명 아기와 산모가 무사히 분만실에서 나오는 게 과거엔 행운이었다.
    기대 수명은 어떠한가? 세계 통계를 보면 1700년 35세를 기점으로 꾸준히 올라와 1900년에 45세, 현재에는 85세를 기록하고 있다. 320년 전보다 50년 더 살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장수하는 게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외적인 조건뿐만 아니다. 거주 이전, 직업/배우자 선택, 여행의 자유가 없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법의 보호 아래 평등하게 대우받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현재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나라를 찾기가 어렵다. 민주주의가 절대 선은 아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 체제라는 데 동의한다. 통계적으로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더 행복하고, 자유롭고, 부유하다고 확인된다.

    저자는 이것이 이성과 과학, 휴머니즘에 기반한 인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해 흄, 홉스, 칸트를 거쳐 현대에 이른 도덕적 논의는 우리가 서로 협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에 합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사를 지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 방식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분명 더 믿을 만하다. 통계와 수치를 근거로 들어 주장하면 주장의 정당성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이성이라는 속성은 지역,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발휘해 생각을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이에 기반해 의견을 교환하고 행동한다.
    더 나은 사회와 환경,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바람과 자신 덕분에 인류는 수많은 발명품, 자연 법칙, 시스템을 발견하고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저자의 생각이 ‘세상이 이렇게나 살기 좋아졌으니 불평하지 말도록 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세상은 분명 좋아졌으나 나빠지기도 한다. 환경 오염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 항상 결과 또한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진 않는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환경 오염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규제와 합의가 나타나고 있지만 객관적인 지표는 지구의 환경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인권과 자유과 드높여지고 있지만 미얀마와 홍콩처럼 민주화에 실패해 많은 이가 탄압받고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활용한, ‘이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없다. 다만 우리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도록 과학, 수학, 철학, 심리학, 역사, 휴머니즘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인류의 진보를 완성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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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이 결과도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진 않는다는 말이 와 닿아요...! 꼭 환경이나, 동시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여타의 것들에도 적용할 수 있어서 좋은 문장으로 읽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