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혼자다. 이 말을 처음 느낀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때 무슨 바람인지 급격히 살을 뺀다고 식욕을 밟아눌렀다. 그리고 딱 2달 뒤, 미친듯이 식욕이 튀어오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폭식증이 시작되었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오로지 음식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밥을 먹으면서도 음식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폭식증으로 피페해진 정신에 생애 처음 시작했던 과외에 알바까지 겹치면서 굉장히 힘들어했다. 늦은 시간 과외를 끝내고 돌아올 때면 공허함을 음식으로 매꾸려했다. 안 그래도 부른 배에 음식을 넣었다. 길거리를 걸으며 빵을 먹었다. 사람들 눈치는 안보였는데 내 눈치가 보였다. 한심하고 한편으로 애처롭기까지 한 내 모습이 싫었다. 자괴감을 음식으로 풀고 참지 못했다는 생각은 다시 자괴감을 낳는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그 누구도 그 순환 속에서 나를 꺼내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한테도 친한친구들한테도 처음엔 한탄을 했다. 내가 이런 상태다, 그래서 좀 힘든 것 같다. 걱정어린 말들은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온전히 느낄 순 없었다. 오직 나만이 그 고통을 안다. 위로와 격려는 고마웠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일에 직접 개입되어 있지 않는 한 그 감정과 상황을 모두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들도 그들이 마주해야 할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나의 어려움에 공감해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내가 인생은 혼자다라는 걸 느낀 이유도 이와 같다. 주변의 따뜻한 위로는 있을 수 있지만 내 감정을 모두 느낄 순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로맨스물인가 생각했다. 남주와 여주, 아픔을 공유하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근데 곱씹어보니까 이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성 간의 사랑보다는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월과 모루는 같은 학교였다는 점, 이월이 바닥에 엎어져있던 모루에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주었다는 점,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손을 잡아줬던 그 날이 서로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었다는 점을 빼면 둘은 관련이 없다. 오랜 시간 같이 보낸 소꿉친구도 아니고, 말이 잘 통하고 서로의 상황을 잘 아는 단짝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그저 잠깐, 하지만 강렬했던 그 찰나의 시간을 공유한 사이였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관계가 된다.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눈사태가 일어나 매립되기 직전에 이월이는 '나 같은 건 어찌돼도 상관없으니 모루만은 살리고 싶었다.' 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희생해서 까지 서로를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나는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루는 이모가 실종되었다. 안 그래도 피폐한 일상 속에서 엄마를 잃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이모가 사라졌다. 나는 이모가 살아있다고 믿고 싶은데 주변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거라고 한다. 이모를 찾아다니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제일 친한 친구마저 입을 닫는다. 이런 모루에게 이월은 유일하게 이모가 살아계실거라고 말해준 사람이다. 이월은 모루의 이모와 마지막 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월은 이모의 실종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이모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월은 모루와 연결되어있다. 이월은 모루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100퍼센트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모의 실종이라는 상황을 누구보다, 어쩌면 모루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모의 실종이 남의 이야기지만, 이월과 모루에게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은 접점도 많지 않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폭식증으로 힘들어 하던 그 당시에 나와 똑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나는 그 사람과 둘도 없는 존재가 되었을까?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최소한 서로에게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은 공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어떤 점이 힘든지, 무슨 기분이 드는지 등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사람들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모이게 되는 이유도 똑같을 것이다. 너의 아픔, 너의 어려움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 우리의 어려움이 될 수 있다면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겐 힘이 된다. 인생은 혼자다. 같은 어려움에 있다고 해서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위로보다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혼자가 아니다. 같이의 가치,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치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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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오늘의 젊은 작가 31)(양장본 HardCover) 출판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