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샀던 책이다. 한 작가에 꽂히면 그가 쓴 책들을 모조리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에, 신영복 선생님이 쓴 책들은 거의 다 읽어 봤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옥중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묶은 것으로, 옥살이의 고초와 인간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다. 하루하루 그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녹아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은 휴대폰 메모 앱 속에 책갈피 목록으로 저장해 두었다. 몇 가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푸른 과실이 햇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 듯이(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163/신영복)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옵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164/신영복)
-나에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 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곧은 손을 불러 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p.172/신영복)
최근에는 주로 종이책을 읽지 않고 휴대폰으로 전자책을 읽는다. 그 편이 훨씬 가볍고, 편하기 때문이다. 가독성도 상당히 좋아, 쉬는 날은 하루에 6권씩 읽고는 한다. 그럼에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같은 책은 한 권쯤 집에 소장하고 천천히 읽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 옅게 줄을 긋고, 시간이 지나면 황혼처럼 누렇게 변색되는 종이와 함께 성숙되는 것도 나름 운치 있는 일이다. 한 때,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심하던 적이 있었다. 인간을 위한 학문, 인간에 대한 학문, 인간의 학문, 인간이 쓴 학문 등 다양한 정의 가운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사는 세상,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이 바로 인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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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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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사는 세상, 그리고 그들이 사는 삶이 인문. 정말 공감되고 멋있는 말이네요.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에 기대어 위로받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인문의 힘이겠지요. 이 책을 침대 머리 맡에 두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신을 위한 선물로 한 구절씩 읽어나가고 싶네요. 좋은 구절 인용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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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에 읽은, 좋은 추억이 있는 책이라 너무 반갑네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곳에서 작은 변화들을 깊이 들여다보며 작은 것들에 의미를 찾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저자의 마음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