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보면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무인도 표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벼운 스토리 안에 내포되어있는 의미들이 아주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인류의 역사와 반대로 문명적인 인간에서 야만적인 인간으로 역류하는 내용이다.
금발 머리의 소년 랠프는 소라 껍데기로 섬에 있는 아이들을 모은다. 그리고 이 소라 껍데기는 문명의 상징이자 후에 권력가의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여기서 떠오른 것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다. 아이들은 험난한 자연, 혹은 커다란 짐승에게서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랠프를 대장으로 선출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대장으로써 랠프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봉화를 지피는 것이다. 봉화나 봉화를 지피는 데 필요한 돼지의 안경은 불이라는 속성에 연결된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주어 인간의 문명이 탄생하였듯이, 봉화란 그들이 문명사회로 되돌아가게 해 주는 이기이자,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는 것이다. 랠프는 분명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그가 가진 권위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 즉,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소라껍데기-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계약일 뿐, 잭의 사냥 부대와 같이 그 계약을 규제할 수 있는 힘과 냉혹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결과로 야만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또 다른 선동자 잭이 나타난다. 잭과 랠프는 처음에는 협력하며 사이좋게 지냈지만 문명화된 사회를 떠나면서 잭은 차츰 그의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권력을 추구하며 야만인들과 같이 진흙을 얼굴에 바르고, 살육을 즐긴다. 피가 튀는 것에 쾌락을 느끼고 암퇘지를 잔인하게 죽이는 냉혹함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나머지 구성원들의 숨겨져 있던 본성 역시 일깨운다. 결국 랠프가 이루었던 사회의 구성원들은 문명을 버리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야만인으로 추락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시 되는 단어는 짐승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 짐승이 뜻하는 바는 낙하산에 매달려 있던 시체이거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파리대왕, 즉 멧돼지의 머리에 파리떼가 붙어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짐승은 실체가 없는 무형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짐승이 뜻하는 바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공포이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 자신의 사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공포, 혹은 이 사회를 위협하는 공포이다. 그 이유로 꼬마아이가 자신이 살던 과거의 집을 말하며 짐승에 대한 공포로 우는 것이나 사이먼이 파리 떼로 뒤덮여있는 멧돼지의 머리를 보며 기절했던 것을 들 수 있다. 꼬마아이의 경우에는 자신의 과거 살던 문명화된 사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공포이고 사이먼의 경우에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사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공포이다. 또한 여기서 꼬마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놀기만 할 뿐 큰 아이들의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즉, 큰 아이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꼬마 아이는 밤에 혼자 있을 때 짐승을 보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말을 했을 때는 낙하산에 매달린 시체가 섬에 추락하기 전이었다. 그가 본 것은 시체도, 멧돼지의 머리도 아닌 그 아이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본연적인 공포였다. 또한, 그들이 멧돼지 파티를 하고 춤을 추고 있을 때 사이먼이 짐승은 바로 낙하산에 매달린 시체라고 소리쳤고 그들은 사이먼을 죽였다. 그 후 랠프의 패거리는 죽은 것은 사이먼이었다고 인정하였지만 잭의 패거리는 죽은 것은 사이먼이 아니라 짐승이었다고 말하였다. 잭의 패거리에 있어서 짐승이란 위부의 위협, 즉 그들의 패거리를 결속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소년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랠프보다 더 강력하고 폭력적인 잭을 선택한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들을 뭉치게 하는 짐승이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단순한 시체였다고 말하는 사이먼은 그들의 사회를 유지시켜주지 못하게 하는 공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사회에서의 각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랠프가 민주적 지도자, 문명의 지도자라면 잭은 폭군, 또는 어둠과 야만의 지도자를 뜻한다. 돼지와 사이먼은 지식인이다. 돼지는 랠프의 곁에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하는 등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참모 역이다. 그는 잭이 규칙에 따르지 않는 것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으며,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자기 혼자만 쉬고 있는 등 게으르고 이기적인 성향 역시 있다. 돼지가 정치적인데 반해, 사이먼은 철학적이다. 그는 그 옛날의 철학자처럼 자신만의 장소에서 사색한다. 오두막을 지을 때도 랠프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는 등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는 성실한 성격이기도 하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짐승의 정체를 알리는 등 다수를 깨우치는 선각자적 역할 역시 하고 있다. 또한 랠프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예언 역시 하는 예언자적 성격도 가진다. 하지만 돼지나 사이먼 같은 지식인은 결국 죽는다. 윌리엄 골딩은 나치의 독재 시절에 태어났다. 나치에 대항했던 지식인들이 절명했던 그 시대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나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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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세계문학전집 19) 출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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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2579님~ 좋은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파리 대왕\'이라는 책을 이름만 들어보고는 읽어보지를 못했었는데, stel님 덕분에 어떤 책인 지 알수 있는 시간을 가졌네요! 무엇보다 책에 나온 핵심 단어를 소재로 리뷰를 풀어나가신 점이 너무 인상깊었어요. 표면적으로 보면 단순히 짐승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짐승이 인간 내면의 숨은 공포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리뷰 내용이 정말 깊이있어 보이네요!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았습니다 ㅎㅎ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