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2019년, p.68
코로나 시대를 맞은 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지나가네요. 마지막으로 여행을 간지는 그보다 좀더 오래된 듯합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이라 해도, 밖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여행을 잘 즐기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이 벌어지고, 집과 학교만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문득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상황이 심해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힘든 터에, 도서관에서 여행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다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앞서 쓴 것처럼, 저는 여행을 ‘가’고 싶다기보다 ‘떠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책의 두 번째 장인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집에서 일상 대부분을 보내지요. 코로나 시대에 집에 있는 시간은 아마 더 길어졌을 겁니다. 해야 할 것들로 쌓인 집에서 벗어나 일상과 거리를 두며 새로운 경험을 겪는 점은 분명 여행을 떠날 만한 큰 이유가 됩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여행을 생각하며 바라는 게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알게 되었어요. 여행을 가는 것보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듯합니다.
책의 나머지 장에서도 글쓴이가 여행에 대해 느낀 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소개합니다. 여행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타지에서 여행자로서 지니는 정체성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시대에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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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출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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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즐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팬데믹이 너무 길어지다보니 얼음은차가워요님처럼 저도 어딘가로 문득 떠나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국외는 당연히 가기 힘들 터이니 국내 가까운 곳이라도 훌쩍 떠나 일상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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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부쩍 요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김영하님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데, 이 책은 읽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꼭 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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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심해지고 매일매일 집에 지내다보니, 매일매일이 똑같고 반복적인 일상이라는 느낌이듭니다. 저도 여행을 가서 휴식하며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보다는 그냥 현재를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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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데다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딛게 된다는 게 정말 공감이 가서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제가 심적으로 한창 힘들었을 때 프랑스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활양식이라던가, 예술작품들을 보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경험이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여행 대신 여행 수필을 읽으며 책에 담긴 나라들의 냄새를 전해 맡고는 하는데 맨 앞에 적으신 구절이 크게 공감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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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상처를 흡수한 물건으로부터 달아나기라는 말이 무척 공감이 되었어요. 저는 이 말을 인터넷에서 먼저 보았는데, 집에 쌓여있는 설거지, 청소, 짐 치우기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젠가는 궁극적으로 일거리에서 벗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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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동물원 출판 문학동네학기를 마치면서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책은 나치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며 수용소에서 실험을 당하던 쌍둥이 자매 펄과 나탸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더보기
중·고등학교 역사 수업이나 대학에서 교양 강의로 듣는 역사 수업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을 마주했습니다. ‘100만 명이 죽었다. 300만 명이 학살당했다.’ 하는 식의 내용에서, 오히려 앞에 나온 수치에 집중하여 그들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너무 커 오히려 체감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책은 쌍둥이 자매 펄과 나타샤 ‘두’ 명이 수용소에서 살아나가는 과정을 풀어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삶을 이어나가며 겪는 좌절, 희망, 슬픔, 기쁨, 공포, 분노 등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역사 수업을 들을 때나 다른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숫자가 아닌 사람,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불길의 아이들》을 읽고 작가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소재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은 밝지 않아요. 우울하고 어둡고 우중충합니다. 소녀들이 정상적으로 자랐다면 절대 겪지 않았을 일들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살며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듯이, 책을 통해 평화로운 일상의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창 자라나는 소녀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용소 삶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소녀들의 눈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내용에 몰입해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 받은 느낌이 참 새로웠습니다. 책을 다시 읽으면 그 느낌을 잊을 것 같아 다시 읽기 싫어지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배울 때는 항상 수치나 통계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안네의 일기를 제외하면 실제로 그 시대에 살고 있었던 개인의 일생을 알 수 있는 경험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과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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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들을 평소에 잊고 살면서도, 이런 책들을 통해 문득문득 다시금 아픈 역사들을 되새기곤 합니다. 평화로운 일상의 부재, 어쩌면 지금도 코로나 상황으로 절실히 깨닫고 있는 평화로웠던 일상들의 소중함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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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게 몇십만명이 죽었다, 몇 백만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숫자에 집중하는 나머지, 우리는 그들의 슬픔이라는 정말 중요한 것을 때로는 잊고는합니다. 그 슬픔에 대해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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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읽으면서 가 떠올랐습니다. 안네의 일기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이유가 이 책을 감명깊게 읽으신 이유와 같네요. 수치로 느끼기보다는 정말로 실상을 피부로 느끼려면 같은 온정을 가진 사람의 경험으로 듣는 것 만큼 뼈저린 게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이 마음에 드셨다면 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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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저도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아우슈비츠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었는데, 얼음은차가워요님도 읽으셨네요. 말씀대로 저도 처음에는 100만명, 300만명이라는 숫자가 너무 커서 체감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빅터 프랭클이라는 개인의 책을 읽으니까 공감이 되더라고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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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는 세계 출판 서해문집좀 재미없었습니다. 어떻게 다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요사이 과제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요. 집 앞에 있는 작은 공공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을 자주 다니고, 평범한 대학생보다는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저 제가 편식만 하여 읽고 싶은 책만 읽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업에서 다른 조나 학우의 발표를 피드백할 때 보통 좋은 말만 해주는 것처럼 대충 좋은 말을 꾸며 써도 되겠지만, 그냥 좀 솔직하게 써봅니다.더보기
책 자체나 도서관에서 어떻게 책을 진열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도서관에 꽂힌 책을 보며 무엇을 기준으로 책을 정리하는 걸까, 누가 그 일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은 해본 듯하네요. 과제 때문에 교육 연구 방법에 관련한 책을 찾던 때에, 제 생각엔 비슷한 부류의 책이 전혀 다른 곳에 진열되어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책등에 제목을 가로로 적어놔 고개를 90도 꺾어서 읽어야 했을 때도 책꽂이나 책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 듯합니다.
책은 우리가 수평으로 된 책장에 수직으로 책을 꽂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보여줍니다. 익숙하게만 느꼈던 도서관이 새롭게 보이기는 하네요. -
누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 출판 동녘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무엇인가에 푹 빠지는 일은 꽤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빠지게 되는 계기만큼이나 대상도 다양하여, 저자처럼 동물에 깊이 빠질 수도 있고 저처럼 언어 공부에 푹 빠질 수도 있겠지요. 무언가에 푹 빠져 그것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평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겉만 핥는 방식으로는 알 수 없는 지식을 얻었다는 성취감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지식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앎을 나누면 크든 작든 세상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합니다.더보기
저자 역시 그러한 생각으로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과 함께 자라며 품어온 생각과 다짐들, 생물학을 전공하고 바다거북을 보호하는 최전선에서 느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겠지요. 책을 읽는 내내 저는 과연 지금까지 제가 무엇을 기준으로 생물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습니다.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말처럼 저에게 보여지는 것들, 제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곧,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일방향의 정보만으로 생물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범고래 이야기를 읽기 전에 제 머릿속에 있는 범고래에 관한 이미지를 떠올려 봤어요. 범고래는 굉장히 강하면서도 무리를 지어 먹이를 사냥할 정도로 영리하지만, 인간은 무서운 존재이기에 공격하지 않는다는, 시쳇말로 ‘카더라’ 식의 이야기를 어느 웹 사이트에서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책은 범고래를 실제로 마주하며 겪는 경험에는 물론 미치지 못하겠지만, 웹 사이트를 통해 접하던 정보보다는 더 생생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범고래의 편에 서서 들려주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았어요. 그저 나보다 범고래를 좀더 가까이서 마주해 본 사람이 솔직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범고래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다른 생물을 접할 수 있는 현대인에게, 다른 생물에 관한 가장 개인적인 경험으로 생물 전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