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두 번째로 읽기 잘했다 했던 책이었다. 왜냐하면 어쩌면 내가 ‘여지껏 고민만 하고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던 의문’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자 가족의 탄생’이라는 챕터부터 시작한다. 이 챕터에서는 ‘분자 가족’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이 27%를 넘는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단단한 결합도 느슨한 결합도 있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시대에 살고 있는 미혼 여성으로서 요즘은 ‘굳이 결혼을 해야 할까’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늘 이 생각 뒤에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그러면 또 ‘외롭다고 아무나하고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이러다 보면 끝이 없다. 끝이 없으니 다음에 생각해야겠다고 하고 또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생각이 변했다. 이 책은 불혹이 넘은 나이에 우연히 알게 되었지만 서로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하고 취향마저 비슷한 두 명의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좋은 친구이지만 결정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맞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데, 그런 걸 보면서 꼭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그런 전통적인 ‘가족’이랑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나도 기숙사에서 살았던 경험도 있고, 단체생활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서로의 차이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불편한 점을 참고 넘어갔지만, 그렇기에 솔직하지 못했고 그래서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가 ‘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결혼도 싫고 혼자 사는 것도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마침 마음 맞고 타이밍 맞고 취향 맞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 ‘분자 가족’을 이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물론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만큼,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있는 것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면 될 테니까. 함께 살아도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엉뚱한 다짐까지 하게 된다.
이제는 “이건 당연히 이래야 해”라는 것이 사라지는 세상이 온 것 같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예전에야 가족의 형태가 당연히 그랬다 할 수 있지만, 그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더 이상 그런 세상이 아니니까. 가족의 형태도 그에 맞추어 변화해야 할 것이다.
결혼할지 말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혼자 늙는 건 싫다고 생각되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마음에 드는 구절들
“경탄의 순간에도, 좌절의 순간에도 언제나처럼 혼자였다. 그러고 나니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 동거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느냐 안 맞느냐보다, 공동 생활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을 것 같다. 그래야 갈등이 생겨도 봉합할 수 있다.”
“잘 모르는, 멀리에 있는, 애정이 없는 대상일수록 일반화하기 쉽다. 뭉뚱그리고 퉁쳐도 상관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에 있어서는 아주 작은 차이가 특별함을 만든다. 그 개별성이 소중하고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