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피츠제럴드의 소설에는 그들만의 주인공이 나온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해변의 카프카를 제외한 하루키의 어떤 소설을 읽어도 주인공이 비슷한 사람같다. 이는 작가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고 작가 특유의 개성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움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이 소설도 하루키 소설의 전반적인 특징인 남자 주인공과 사랑, 그리고 메타포의 향연이 이루어 진다. 줄거리가 굉장히 흡입력있고 힘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결말까지 쉬지않고 읽을 수 있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카우보이, 뜬금없는 NPC같은 사람들의 등장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듯 하다. 이것들의 등장으로 하루키는 자신의 철학을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환상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실망과 환멸, 비극적 상실감, 꿈과 환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는 소설이다. 이데아와 메타포에 대해 생각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애상적이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힘있는 소설이었다.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분명 이 소설도 무난하게 재밌을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이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본다면 하루키의 영감의 원천 또한 느낄 수 있기에 이 또한 모두 추천한다.
인상깊은 구절
사람은 때대로 크게 변하곤 합니다.
자기 스타일을 대담하게 깨뜨리고 그 잔해 속에서 힘차게 재생하기도 하지요.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만약 그 그림이 뭔가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냥 말하게 두면 돼.
은유는 은유의 상태로, 암호는 암호의 상태로, 소쿠리는 소쿠리의 상태로 놔두면 된다고.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