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튼, 여름(큰글자도서)(아무튼 시리즈 30) 작가 김신회 출판 제철소 나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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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사한 추억 없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달콤씁쓸함,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것. 나에게 달콤씁쓸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여름이다. 여름은 내 곁을 지겹도록 꾸준하게 찾아오는 존재이다. 지치지도 않는지, 그리 반갑지 않은 뜨거움과 축축함을 몰고 꾸준하게 매년 나를 찾아온다. 나는 사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온몸이 떨릴 정도로 새하얗게 시린 차가운 날씨, 차가운 음식, 차가운 계절을 좋아한다. 물론 따뜻함과 관련된 것들을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땀이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더운 것 가까이에 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왠지 꺼려졌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도 너무 오래 보면 질리듯 한창 겨울이 지나가고 있을 때면 따뜻한 여름 바람이 그리울 때도 있다. 뺨이 아릴 정도로 친절하지 못한 겨울 날씨에 밖은 나가지 못하고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고 있으면, 여름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 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마음껏 취하는 행복했던 장면들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면 여름의 추억이 겨울 외투보다 더 몽글몽글하고 포근했던 것 같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준다.”

    그렇지만 나를 바꿔준 것은 항상 여름이었다. 나에게 여름은 2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 두 번째는 새로운 결심의 시작이다. 햇님이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람들의 옷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할 때면, 항상 새로운 결심을 하곤 한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해야지 하고 시부저기 시작한 일에 저절로 몸이 움직이고, 그 일은 점점 커지고 기간은 길어지게 되었다. 한 여름 밤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건강을 위해 살 빼기, 매일 일기 쓰기, 도서관 2주에 1번씩 가기, 필사하기, 평소에 하는 생각이나 감정을 글로 기록하기, 방에서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는 미니멀리스트 되기 등. 다른 사람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새로운 일을 다짐하거나 목표를 세우지만, 나는 이상하게 여름만 되면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어진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그 후덥지근함에 홀려 무기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본능일지도. 여름은 덥고 습해서 표면적으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웃기게도 나는 여름을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여름의 뜨거움에 움츠려 있지만, 속으로는 여름을 아주 환영하고 있던 것이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난 사실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하지만, 왠지 여름의 후덥지근함이 그리워졌다. 한낮에 내리쬐는 햇빛, 잠 못 이루게 하는 여름밤의 공기와 그 사이로 살푼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한 줄기까지. 아무리 겨울의 찬 공기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게 하더라도, 온몸을 익히는 따가운 햇살이 사람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여름의 오후는 고즈넉하고 느긋하게 만들어 한없이 늘어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더위에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내 걱정과 불안도 푹푹 찌는 날씨에 흐르는 땀과 함께 씻어 내려 없어지게 된다. 남아 있는 수많은 여름 중 가장 빨리 만나게 될 여름은 조금 더 아껴주고 소중하게 보내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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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 저도 여름에 인생을 바꾼 큰 결정을 했어서 그런지 그 해 여름의 공기, 상황, 이야기 나눴던 사람들까지 아직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반면 큰 상처를 받았던 겨울이 되면 그 날짜 근처만 다가와도 기분이 안 좋고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게되곤 합니다. 계절이 주는 기억의 효과를 나봄님의 글을 통해서 다시 느끼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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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여름이 되면 겨울이 그립고, 겨울이 되면 여름이 그리운 변덕스러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날씨가 너무 춥다보니 그 끈적끈적하고 습했던 여름 날씨가 생각날 정도로 뜨거웠던 여름이 그립게 느껴집니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푸른 녹음의 계절,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고 덥다는 이유로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면서 여름의 즐거움을 느끼는 그 기억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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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사가 너무 마음을 후비네요..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라는 대사가 너무 감성적인 것 같아요. 저도 특정 계절을 좋아하는데 알고보니 그 계절 자체를 좋아하기 보다 그 계절에 얽힌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 때문일까요..? 뭔가 가슴이 뭉클하고 씁쓸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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