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작가 하현 출판 비에이블 나봄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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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함께라는 가능성을 가친 채로 기쁘게 혼자가 된다. 그 안전한 고립감이 너무 달콤해서 들키지 않게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창밖은 푸르고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어느 맑은 날에.”

    ‘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에 이어 본격적으로 하현 작가님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책이다. 제목부터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라니. ‘함께라는 가능성’이라는 말도 다정하고 친절한 말이라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부끄러워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찐 내향인인 나의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읽으면서 자꾸 나와 닮은 점이 나와 신기하고 정이 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다. 평소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서툴렀던 것들만 쏙쏙 골라 글로 옮겨 놓은, (물론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나의 영향은 전혀 없었겠지만!) 사이다 같은 책이다. 읽으면서 계속 나의 머릿속 흐릿하게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가치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어려울 때면 사람으로 태어난 게 이 생에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같았다. 어쩌면 나는 고양이나 흰수염고래의 영혼을 가진 채로 인간이 된 게 아닐까?”

    내향인에게 활발한 인간관계는 어렵다. 물론 모든 내향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가끔은 버겁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다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몰려다니다 보면, 나의 하찮고 귀여운 에너지를 전부 써버려서 금세 지치게 된다. 연비가 낮은 인간에게 친목 모임은 다 내려놓고 나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사진 중에 ‘아무도 날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사진을 보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한 것처럼 이 책에서 ‘고양이나 흰수염고래의 영혼’이라는 말이 신선하고 나의 상황에 탁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였다.

    고양이의 영혼이라는 부분을 읽으며 뜬금없지만, 하현 작가님의 인스타 프로필 사진은 고양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말해보자면, 나는 고양이를 사랑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제일로. 나에게 우리 학교 풀밭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고양이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1교시 수업에 들어가기 전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는 고양이들이 고고하게 식빵을 구우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손에 간식이 들려 있는지를 스캔하면서 말이다. 친절한 고양이들은 내게 명랑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해준다. 내가 너희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영혼은 고양이지만, 이왕 인간으로 태어난 김에 내향적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한 내향적인 인간으로서 부지런히 나를 성장시키고 가꾸고, 두렵더라도 사람과 어울리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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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부터 너무 매력적인 책이네요! 또 다른 찐 내향인인 저도 이 책을 읽으면 무한 공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ㅎㅎ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 저도 약속이 취소되기를 내심 항상 바라고 있는데 작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글을 쓴것이 신선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도 요즘 들어 약속 나가는 일이 매우 귀찮고 힘들게 느껴지곤 해요. 활발한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때,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책을 읽어야 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