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죽음 뒤의 이야기, 그러니까 죽은 이는 볼 수 없을 남겨진 것들의 삶을 담아내었다. 누군가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난생 처음 보는 누군가의 소중했던 삶을, 슬펐던 삶을, 행복했던 삶을 지켜주고 있었다.
나도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외면하고 싶었고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그 떠남을 눈으로 보고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인정해버린다면 그 순간, 떠났다는 것이, 그러니까 이제는 숨을 쉬고 뜨거운 심장이 뛰고 목소리를 내뱉는 모습은 차갑게 식어버렸으며 보고 싶다고 언제든 찾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움이란, 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대상은 그 자리 그대로 멈춰 있으니까. 그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 사이의 까마득한 거리를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한 영영 좁힐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다. 아무리 영혼은 곁에 있다고 해도, 좁힐 수 없음을 스스로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서 더욱 허무해진다.
현실에 치여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가다가 문득 떠올라 서둘러 뒤를 돌아봤을 때,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어졌음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느끼게 되었을 때, 그래서 다신 볼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이젠 멈춰 있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음이,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은 내 기억을 더듬어 희미하게밖에 볼 수 없음이 억울해 미칠 지경이다. 난 아직 살아 있는데, 그 대상은 그때 그 시절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때.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잊어버릴 때쯤 되면 또는 다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면 다시 떠올라 나를, 내 감정을, 이성을, 내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헤집어 놓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추한 모습을 원하진 않았을 텐데. 행복하고 멋진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한다고 했는데. 인정하기 싫지만,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미 잃어버린 뒤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만은. 그래도 독하게 살려는 이유도, 나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 다짐한 이유도, 시련에도 아무 말 없이 단단하게 버텨내려는 이유도, 당장 내일 눈감아도 후회 없을 오늘을 보내기 위해 나를 태우며 사는 이유도, 하고 싶은 일들에 탐욕스럽게 뛰어들어 전부 이루어내려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길고도 짧은 삶이 무사히 지나가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떠나고 난 뒤 듣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