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처음으로 시의 매력을 알려준 시인이다. 그동안 시를 읽으면서 진짜로 마음에 와닿은 적은 없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사람들이 시를 읽는구나 생각했다. 가장 처음 접한 시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였다.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푸르스름한 침낭 속에서 아아아, 기지개를 켜며 필라멘트처럼 눈을 깜박였다. 박사님, 박사님, 물결을 일으켜줘요. 내게 감동을 불러일으켜줘요.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박사님은 굿모닝. 내게 또 오늘 하루를 기념하며 뽀뽀를 해주죠. 오늘은 18세기 초, 내일은 21세기 말이래요.
나의 사랑은 자살을 선언한 사이보그. 그의 숭고한 정신을 사모하기 위해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흰쥐들은 나날이 무섭게 살이 찌는데요. 박사님, 박사님, 내일쯤엔 흰쥐들이 우리의 마차를 끌 수 있을까요?
오늘은 18세기 초, 나의 거대한 사랑은 더러운 망토를 펄럭이며 저토록 고독하게 걸어가요. 내일은 21세기 말, 우리들의 결혼식이 있어요.
박사님, 박사님, 실험실 밖에서는 아무도 실험을 하지 않나요? 나는 실험실에서 태어나서, 첫울음 대신 첫사랑 나의 프랑켄슈타인. 박사님은 굿바이, 굿바이, 나의 미래를 축복해주시겠죠.
나는 아직 작은 가슴이지만은요, 쿵, 하는 소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그때 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를 보고 있었는데, 조물주와 창조물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영화 속의 인간들은 인간을 만든 조물주를 찾아 우주를 찾아헤맨다. 그러나 성경에 적혀있던 것처럼 조물주가 창조물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는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어떻게 신이 인간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사랑할 수 있을까? 세상에 당연한 게 있을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조물주에 도전하기 위해 괴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마찬가지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로 한다. 신의 권능은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것. 괴물은 말한다. 나의 사랑은 자살을 선언한 사이보그.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쿵, 하는 그 소리는 땅에서 하늘까지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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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능력(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출판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