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 혁신과 반성의 중요성
떡잎이 자기 역할을 다 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도둑이 됩니다. 뱀이 허물 벗고 누에가 껍질을 벗듯이, 유기체는 기존의 낡은 존재 방식을 새로운 것으로 지양해야 삶을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 이 엄정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떠한 것도 생명력이 다하고 맙니다.
제 속에도 영웅과 도둑이 함께하고 있음을 최근에야 깨닫습니다. 젊은 시절 저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고 괜찮은 선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제가 젊었기 때문이겠죠. 주변의 연로한 교사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가르침의 방식에서도 젊게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시나브로 나이 들어 가는 것은 모르고 언제까지나 제 방식이 젊고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아이들도 동료 교사들도 변해 가는데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그건 일관성이 아니라 도태되고 있는 겁니다. 뒤늦으나마 자기 혁신을 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열린 마음을 갖자. 구시대적,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행동이 없는지 돌아보고 반성하자. 신념을 바꾸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말고 용기를 내자.
2. 배움의 과정
사토 마나부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만남과 대화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즉, 학생은 사물(대상 세계)과 만나고 타자와 대화하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앎의 지평을 넓혀 갑니다.
한국 학생들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주어져도 밤잠 안 자고서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냄으로써 외국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하다가도, 막상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problem posing)에는 무능을 보이고 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자 뉴턴이 사색하다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 냈듯이, 인류 지성사에서 위대한 발견은 대개 자신과의 대화로 얻는 법입니다. 한국 학생들은 사토 마나부가 말하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 자기 스스로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해 본 경험이 부족하니 고차원적인 배움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배움은 나 자신과의 대화로 얻는 법임을 알고 감.
3. 비움과 채움
고3 수험생이라면 몰라도 초등학생들의 방학은 텅 비우게 해야 합니다. 방학 때 아무것도 안 한다는 생각으로 학원을 평소보다 2배로 돌리고 하면 아이를 망칩니다. 성장하는 아이의 그릇은 채울 때보다 비울 때 커집니다. 그리고 이 비움을 통해 학생은 긴 호흡으로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길러 갑니다.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개구리의 동작을 퇴행으로 보지 않듯이, 먼 길 가는 여행자가 잠시 쉬는 것을 게으름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요. 학업을 수행하는 것은 장거리 여행이고 마라톤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초반부터 전력으로 달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학생이든 어른이든 인간의 그릇은 비울 때 제대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릇의 존재론은 무엇을 담기 위한 것인데, 담기 위해서는 먼저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채움과 비움의 역설이나 거기서 파생되는 일과 휴식, 학습과 수면의 관계 또한 일견 상극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된 속성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정리가 됩니다.
-고등학교 때 휴식의 중요성을 무시하여 성적을 그르친 경험이 있다. 임용 공부를 할 때는 똑같은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4. 통합적 관점으로 아이의 잠재력 일깨우기
자녀 교육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부모들이 담임교사에게 자주 털어놓는 말이 "우리 아이는 내성적이어서 문제다"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마다 저는 내담자에게 "내성적인 것은 축복받은 자질임"을 일깨워줍니다.
내성적(initrospective, introvert)이란 말의 본뜻은 말 그대로 '안으로 향한다'의 의미입니다. 한자로도 '성찰'의 뜻을 품고 있어 영 단어의 의미와 일치하고 있죠. 내성적인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성향 탓에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곳에 문제의식을 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때문에 조직 생활에서는 적응을 잘 못 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런 사람은 조직 발전에 크게 기여할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집단의 건강성은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소수의 노력에 의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통합적 관점으로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는 리더십이 강한 반장 아이의 빛나는 자질 이면에 있는 잠재적 독재성을 간과하지 않으며, 소심한 성격의 아이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는 빛나는 장점을 발굴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할 것입니다.
장난이 심한 아이가 있다면 그를 백해무익한 공공의 적이 아니라 혈기왕성한 개구쟁이로 봐야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경우를 '주의력결핌과잉행동장애ADHD'란 이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잉 행동'이란 말은 영문 'hyperactive'에서 보듯이 좋게 보면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마이클 펠프스는 이 심각한 마이너스적 자질을 수영을 통해 플러스적 자질로 전화함으로써 오늘날 수영 황제가 되었습니다.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 통합적 관점(사물에 내재된 대립적인 두 속성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연관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사고방식)의 그 오묘한 법칙성을 알게 되면 학생이나 교육,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고 깊어지겠다는 생각함.
5. 교사의 존재 이유는 실패하는 학생들에게 있다.
교문 위에 서울대에 몇 명 입학시킨 것을 자랑하는 현수막은 널려 있어도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패배자들이 그늘진 곳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고뇌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나니, 교사의 존재 이유는 실패하는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아프고 병든 사람에게야 의사가 필요하다. 아픈 정도가 심할수록 더 절실하게 의사가 필요하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상처 많고 아픔 많은 아이에게 더욱 교사의 관심이 필요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