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유명한 정세랑 작가의 SF단편 소설집이다. 정세랑 작가가 꾸려내는 세계관이 매력 있었고, 표지에 눈길이 가 선택한 책이다. 서평을 쓰면서 보니 표지엔 각 소설의 등장인물이 그려져 있어서 책을 다 읽은 후 누가 누구인지 추측하는 재미도 있지 싶다.
8개의 단편소설 중 하나인 ‘리셋’에는 도시를 이루는 거의 모든 구성물을 먹어치운 뒤 분변토로 배출하는 거대 지렁이가 등장한다. 거대 지렁이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인류는 도시가 파괴되어 멸망 직전까지 갔으나 멸망하진 않았다. 거대 지렁이가 누군가 조종을 멈춘 듯 갑자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리셋’이라 부르기로 했다. 리셋 이후의 인간은 다른 종에게 지구를 양보하고 지하도시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과거 모습을 좋게 바라볼 수 없었다. 한 번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품이나 밀집 사육 등 재앙을 불러온 과거의 과잉 사회는 불편하게 여겨진다. 발리에서 일어난 화산폭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도와주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7교시’도 비슷한 결을 가진 단편소설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으로 향하다가 적정 인구수를 유지하고 생활반경을 줄여 나머지 종을 해치지 않으며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배양 단백질로 다른 종의 사육과 도축이 사라지고 아래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진 미래 모습을 그려냈다.
“하지만 21세기 사람들이 소와 돼지 대신 곤충이라도 먹었다면, 급한 대로 밀웜이라도 먹었다면…….”
“밀웜은 무슨 죄야? 종차별이다, 그거”
작가는 23세기의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 봐 두렵다고 말한다.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재활용이 어려운 일회용 컵을 무분별하게 사용한다. 또 평균 수명이 7년이 넘어가는 닭을 30~40일 안팎으로 도축해서 공급한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나로서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드는 마당에 미래 세대가 21세기 역사책을 보면 얼마나 기겁할지 씁쓸한 마음이다. 정세랑 작가는 이런 문제점을 눈앞에 보이듯이 과장하거나 세세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에 미래 세대가 21세기의 모습을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통해 잘못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이런 서술 방식은 독자가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21세기 역사책에 ‘사회의 큰 흐름은 파괴적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시도가 있었다.’라고 서술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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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출판 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