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 몇 광 년에서 오고 있을지도 모를 나의 애인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말을 직접 건네지 않는다. 대신 아주 풍부한 색채를 가진 낱말로 상대방을 적신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에 이토록 다양한 말이 있다니, 읽는 내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왔어. 2만 광년을, 너와 있기 위해 왔어.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2만 광년을 오직 한아를 보기 위해 비행해서 왔다는 경민의 말은 그 어느 프로포즈보다 달콤하다. 감히 우리가 가늠하지도 못할 차원을 그는 겪어온 것이다.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이 책을 읽다보면 대산청소년문학상 동상을 수상한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이름은 첫사랑, 여름이니 기회가 된다면 다들 읽어보길 빈다. 그 시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화성인들이 사랑을 묻거든 네 이름을 불러야지" 이 책과 정말 잘 어울리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그제서야 지구에서 한아뿐, 이라는 제목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직 한아를 위해 몇 광 년을 달려온 경민. 그 사랑의 위대함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로그인 해주세요 to post to this user's Wall.
-
지구에서 한아뿐 출판 난다
-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말들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참 낡고 진부한 소재인데, 시대를 넘어서 노래 가사나, 문학 작품에서 한결같이 다른 말들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이겠지요? 오직 사랑 때문에 누군가를 위해 몇 광년을 거뜬히 달려올 수 있을만큼요.
-
너와 있기 위해 2만 광년을 날아 왔다는 말이 참 따뜻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추천해주신 책을 읽으며 다채로운 표현에 한 번 빠져보고 싶습니다.
-
-
천 개의 파랑 출판 허블고등학교 3학년, 입시와 압박에 치이던 나는 소설 속의 세상으로 도피하곤 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 중 하나가 천 개의 파랑이었다. 천 개의 파랑. 소설에서 콜리가 떠올릴 수 있는 단어의 합이 천 개이다. 그렇다면 파랑은 무엇일까. 나는 색깔이 아닌 파도를 의미한 파랑(波浪)을 떠올렸다. 주인공 모두의 바다는 무척이나 깊고 깜깜해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 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런데 콜리가 등장하고, 콜리가 주인공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면서부터, 각자의 바다는 여러 색깔의 파도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시작한다.더보기
콜리는 주인공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생각에도 파랑을 일으켰을 것이다. 콜리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한국에서 태어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대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앞에도 뒤에도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로 달렸던 나에게 이문장은 노크 없는 위로로 전해졌다. 콜리도 투데이도 효용가치를 잃은 기수와 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아갔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달리는 연습이라니, 제 마음에도 콕 박히는 표현입니다. 저도 늘 앞만 보고 남보다 빠르게 달리는 데에 주력하고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네요.
-
색다른 말입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빠르게 가야하는 것이 중요시되어지고 저도 모르게 그러한 생각들이 저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느리게 가야하는 연습이라..^^ 추천해주신 책을 한 번 읽고 저도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
-
해가 지는 곳으로 출판 민음사바이러스의 창궐 잉후 동생 미소를 데리고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는 도리가 있다. 그 과정에서 지나를 만나고, 재앙의 한복판에서 사랑은 조용히 고개를 든다.더보기
"죽는 순간 나는 미소에게 무슨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해. 사랑을 부탁할 것이다. 내 사랑을 부탁받은 미소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한다는 구절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작가 최진영의 말에서도 사랑은 중요한 키워드로 존재한다.
인간은 사랑으로 매듭지어진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완전하지 않음을 알면서 사랑에 뛰어든다. 불구덩이 속에서 뜨겁게 소멸하기도, 차가운 빙하기에서 얼어붙기도 하겠다. 그럼에도 사랑한다. 사랑은 남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난간 속 낙서로, 때묻은 곰돌이로, 계절의 모퉁이에 남기 때문이다. -
구의 증명 출판 은행나무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 무엇일까.더보기
소설 속 구와 담은 마치 비익조같다. 한 명이 사라지면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소설 속 구절 '우리는 사귄다는 단어를 채우고도 그 단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넘쳐 흐르는 존재였다.' 를 보면 그들의 깊은 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서로는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 해답은 오로지 구와 담만이 알고 있다.
담은 죽은 구를 머리카락부터 발 끝까지 먹어치운다. 책의 소재가 이렇다보니 많은 독자의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다. 나 역시 예전에 이 소설을 접했을 땐 거북한 기분이 들었는데, 북토크를 위해 책을 다시 읽다보니 담의 기분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구를 잃은 담은 자신의 세계가 어그러지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구를 증명해내야 하는데, 구는 이미 죽었다. 구를 먹으면, 식도에서 천천히 소화되고 그것이 담의 살점과 머리카락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 아닌가. 담이 선택한 구의 증명법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오롯이 하나가 됨으로서 그는 구의 존재를 증명한다. 담은 해갈되지 못한 감정을 구를 먹는 행위로 채우려 한다. 담은 사랑의 방식으로 식인을 택한 것이다.
-
소년이 온다 출판 창비"당신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더보기
<소년이 온다>를 읽어봤거나, 관심을 가지고 찾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구절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자, 5.18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구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만큼 책에선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아픔을 설명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러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그 날의 상황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 누군들 느껴보고 싶었을까. 이 책에선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아들의 장례를 치뤄야 하는 엄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주인공을 찾으러 다니는 친구, 누나, 주인공의 영혼까지. 이 모든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비현실적이다. 아직도 광주는 5월에 축제나 행사가 없다고 한다. 집집마다 반드시 한 명씩 희생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 5월의 광주는 이리도 조용한 지에 대해서. -
칵테일, 러브, 좀비 출판 안전가옥칵테일, 러브, 좀비는 네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두번째 단편인 습지의 사랑과 마지막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가 인상깊게 다가왔다.더보기
습지의 사랑이라니, 제목만 들어도 축축한 습지의 안개가 떠오른다. 물가에서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한 물(여울)과 숲에서 자신의 죽음을 찾아 헤매는 숲(이영)은 서로를 하나뿐인 친구로 맞이한다. 숲을 개발하여 골프장으로 만들면 숲의 거처가 사라질 거라는 것을 짐작한 물은 관계자를 물에 빠트려 죽인다. 물은 하천이 범람하지 않는 날엔 늘 같은 자리에서, 홍수로 하천이 범람한 날에는 숲의 곁에 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숲도 마찬가지이다. 매번 흙투성이인 발을 이끌고 물을 찾으러 온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정의 가장 높은 단계는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다른 방식의 사랑을 보여준 책 <아가미>가 떠오르기도 했다.
마지막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결말을 보고서야 그 제목의 함의를 알 수 있게 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정확히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손에 칼을 드는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이 모든 단편집이 사랑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정리됨을 깨닫게 되었다. <초대>는 나를 개조시키려 한 남자친구로부터 나를, <습지의 사랑>은 하나뿐인 말동무를 위해 서로를, 표제작인 <칵테일, 러브, 좀비>는 사랑하는 딸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무기를 든다. 죽임에 망설임은 없다. 사랑이 지속가능한 상태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