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삶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작가 나름의 결론을 소설로 풀어놓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안진진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삶의 부피’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의 부피가 이토록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안진진은 있는 힘껏 자신의 삶을 탐구하겠다고 결심하는 한편, 결혼을 삶의 양감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란성 쌍둥이였던 이모와 어머니가 결혼이라는 선택 이후에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축입니다. 둘의 삶은 타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행복과 불행’이라는 상반되는 단어로 간단히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물과 기름처럼 양분되지 않습니다. 소설의 초반에 ‘삶의 부피’라는 화두를 던진 작가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이를 이모와 엄마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삶으로 풀어냅니다.
"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
불행은 역설적으로 엄마를 살아가게 합니다. 반면, 이모와 이모부라는 단단한 성벽으로 보호받아 단 한 번도 날것의 불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주리의 삶은 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빈약하다 못해 지리멸렬한 삶을 견디지 못한 이모는 죽음이라는 극단을 선택합니다.
주변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방식은 삶을 제대로 탐구해보리라 마음먹은 주인공 안진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그녀의 사랑 그리고 결혼에 말이죠. 상반되는 두 사람을 놓고 저울질하던 그녀가 마지막에 누구를 선택하게 되는 지는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축입니다. 결국 안진진은 스스로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닿을 수 없기에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에 뛰어드는 선택을 하는 것이 삶의 모순임을 역설하며 글을 맺습니다.
흥미롭게는 읽었지만, 불행에 대한 작가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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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출판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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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작가님의 글은 워낙 유명해서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서평으로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을 먼저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네요. 특히 서평에 적어주신 삶의 부피가 빈약하는 표현이 정말 인상깊어요. 결혼을 자신의 삶의 양감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택하는 것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은은한 구름님은 불행에 대한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글을 쓰셨는데, 저는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의견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해요. 불행이 역설적으로 엄마를 살아가게 하고, 단 한번도 날것의 불행을 경험해보지 못한 주리의 삶은 빈약하다... 사람이 항상 불행하기만 하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지만, 삶에는 언제든 불행이 닥쳐오기 마련이잖아요. 불행을 피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불행을 마주하고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대해서 고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불행에 대한 면역이 생겨야 다음 불행을 잘 넘길 수 있을 테니까요. 반면 주리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불행이나 시련을 겪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 하나만 와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행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서 없었으면 하는 존재이지만, 또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이 참 모순적인 것 같습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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