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은 이미 유명작가 반열에 올라있던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이 책은 작가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콩쿠르상을 수상해 전세계에 ‘과연 에밀 아자르는 누구인가’하는 파문을 일으켰다. 이로써 로맹가리는 두 개의 이름으로 각각 콩쿠르상을 수상한 전무후무한 작가가 되었다. (말하자면 정체숨기기에 성공한 마미손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릴적 부모에게 버림받은 열 살 꼬마 모모이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의 보육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둘은 티격태격 늘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지만 험난한 세상에서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늙고 병든 로자 아줌마의 삶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어린 모모는 느낀다.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해져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상처로 다져져 다소 위악적으로 변해버린 세상의 많은 ‘모모’들을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외계층’이라는 하나의 부류로 그들을 뭉뚱그려 멸시하거나 동정의 존재로만 바라보는 어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원치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생(生)은 주어진다. 이 생을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지는 자기만의 몫이다.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는 자기 앞의 생을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던지는 “사람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나요?” 라는 물음은 작가가 던지는 물음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결국 우리 생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돈도, 지위도, 명예도 아닌 내 옆의 사람과 나누는 사랑인 것이다.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와 이를 지켜보는 모모를 묘사한 책의 후반부는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폭발적으로 하나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느끼는 무한한 사랑’이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보육 관계였지만 둘의 유대는 그 어떤 가족보다 강하고 단단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는 소설이었다. 오랜만에 순도 100퍼센트 진짜 감정을 책을 통해 느꼈다. 따뜻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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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문학동네 세계문학)(양장본 HardCover) 출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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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의 감정. 공감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책 읽으면서 펑펑 울었었던 책이에요. 누구에게나 원하지 않아도 생은 주어지니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그 생을 자신의 의지로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 )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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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100 퍼센트의 감정이라니, 리뷰와 댓글을 보며 꼭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라는 질문만으로도 마음이 콕콕 아려오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가장 크고 소중한 가치로 삶을 채워갈 수 있기를. 교직에 서게 되면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또 그 아이들 중에는 많은 ‘모모’들을 만나게 될텐데 그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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