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룰루 밀러 출판 곰출판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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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가. 저자는 질곡의 세월을 견딘 애나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고독함에 취해 어둑한 밤길을 걷노라면, 스스로에게 금치산자를 명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끔. 어릴 적 작가는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순수해서 잔인한 대답을 한다.

    “의미는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 같은 존재는 없어!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넌 중요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명랑하게, 이런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는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부끄럽지만, 내가 밤의 사금파리를 짓씹어내며 걸을 적 떠올리곤 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버지는 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동경이나 낭만 대신 잔혹함을 일깨워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누구보다 낭만적인 인생을 살았다. 작가의 어머니를 위해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주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인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었다. 오히려 그 축이 아버지의 삶을 견뎌내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아버지의 답변과는 달리, 자신이 티끌 같은 존재라는 ‘사실’에 무력해 하며 아버지처럼 대범하게 살지 못함에 괴로워한다. 그녀는 방황하다가, 생물 분류에 인생을 바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에게 매료된다. 그의 업적은 의미가 없음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투쟁의 증표였다. 모두가 무의미하다 손가락질하는 그의 삶이었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끈질김으로 삶을 개척해나간다. 이에 일종의 장엄함을 느낀 작가는 데이비드 조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한다.

    목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자연을 향한 순수한 열망은 데이비드의 인생의 지침을 바꿨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러한 맹목적인 데이비드의 인생이 얼마나 자기기만 적이었나를 알고 있다. 그가 그렇게나 추앙하던 루이 애거시의 동상이 지진으로 인해 머리부터 바닥으로 고꾸라졌을 때는, 알 수 없는 희열감마저 느껴졌다. 우스꽝스럽고. 급소를 찌르는 장면이다. 어쩌면 룰루 밀러도 이때부터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의 그릇된 집념은 그저 무너져내리는 돌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데이비드는 우생학에 열광했고, 물고기를 분류해 인간사에 기여하고 싶다는 미명 아래 많은 이들을 착취해서 그들의 성취를 앗았으며, 권위를 지키기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묵살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견고한 거짓말을 보호막 삼아 그 안에서 서슬퍼런 칼날을 갈고 있었다. 그가 이룩해낸 업적(알려진 물고기의 1/5을 찾아낸 일 등)을 생각해보자면 그러한 실책이 과연 그렇게 나쁜 일인가, 자기기만이라는 게 괜찮은 연료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는 낙천성을 방패로 삼아 스스로에게 또 다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긍정적 착각이 될 수 없으며, 긍정적 착각을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게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된다. 데이비드의 방향타를 슬쩍 밀어 그가 경로를 이탈하게끔, 그토록 파멸적으로 경로를 벗어나게 만든 개념은 거대한 음모가 아니라, 그 작은 오만과 긍정적 착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그가 우생학에 빠져버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옳다고 믿었던 우생학에 의해 애나는 삶의 많은 것들을 빼앗겼다. 수용소로 끌려가 학대당하고 강간당한 일, 정신 지체자 취급을 당한 일, 온몸이 부러지고 생식기를 절단당한 일들을 겪고도 그녀는 삶의 소중함을 믿고,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만큼 다른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게끔 보호해주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하는 법을 알려준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는가.’ 애나도 경쾌하게 답변하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쾌함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며, 내면에서 만들고 싶어 하고, 아무리 멀고 넓게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함이 든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스스로 중요하다고, 귀중한 사람이라 여기는 것이 오만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렇기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의심했다. 당신은 나에 대해 어떤 것을 알기에 나를 사랑한다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감정이다. 아무런 수고 없이도 저절로 습득되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해주니 말이다. 그렇지만 오만한 것은 나다.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을 놓쳤다. 어쩌면 지금도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긍정적 착각이라 불리는 것을 연료로 삼아 내 착각을 방해하는 것을 공격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악한 생각이 속에서부터 무럭무럭 자라나면 단칼에 이를 잘라버릴 힘을 얻게 됐다. 나는 그동안 보호막을 핑계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그를 좇는 룰루 밀러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두운 마음에 이름 붙일 수 있게 됐다.
    자, 이제 남은 일은 무엇인가. 원인을 찾아 명명했으니 이제 그 라벨을 떼어내면 된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상처 주지도 않을 거다.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이지 않을 거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나,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나를 아름답고, 장엄하고, 대범한 길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내 안에, 나를 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의 안에 있다.

    의지적인 자세로 책을 읽다가 만나게된 마지막 장의 이름은 ‘Deux ex machina’이다. 그리스 희곡 중에서 마지막에 나타나 모든 것을 결론 내리는 신의 이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에 시대>에도 이 신이 다른 말로 언급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만일 정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모든 것이 편할 것이다. 곤란해지면 신이 내려와서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 그렇지만 그런 신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신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을 정도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는 우리가 명명하여 분류하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어떠한 물고기도 우리가 갑자기 물 밖으로 꺼내어 들고 괴상하고 긴 학명을 붙인다고 해서 신경 쓰지 않는다. 물고기는 에테르적 차원에서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있든지 말든지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이다. 물 밑에서 물결의 시간을 온몸에 새기며 유영하는 그 아름다운 생명체.
    나는 스스로가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레코드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레코드판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려면 바늘을 올려 긁어야만 한다. 그렇게 상처를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한 자기연민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날 때다. 밤의 사금파리를 짓씹어내지 말고, 입 속에서 부드럽게 녹여낼 때다.

    이 책을 읽은 지금, 누군가 삶의 의미를 잃어 스스로에게 금치산자를 명하려 한다면 자신있게 말해줄 테다. 어떤 비는 너무 빽빽이 내려 숨 쉴 공기조차 땅바닥으로 메다꽂지만, 그래도,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소나기일 뿐이라고.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고. 바다는 부서지면서도 내내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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