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인 스노볼 속 세상은 한없이 평화롭고, 잔잔하기만 하다. 그 밖의 세상은 아무렴 상관이 없는 듯이. 그러다가 누군가 손을 들어 스노볼을 흔들면 그 세상은 한순간에 눈보라가 인다. 그 밖의 세상은 아무렴 상관이 없는 듯이.
소설 속에서 현실과 가장 다른 것은 역시 녹지도 않고 내리는 눈이다.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곳에서의 눈은 재앙이다. 그러나 실종된 이모를 찾아 나서는 ‘모루’는 재앙 속에서도, 순백의 깨끗하고, 조용한 눈에 애정을 가진다. 무너진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을 앗아간 눈에 애정을 가지는 모습이 결핍되어 보였다.
이모 ‘유진’은 삶이란 모를수록 행복하고 알수록 불행한거라고, 듣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모루에게 그건 복 받은 것이라며 최대한 오래 무지하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무식은 죄가 아니지만 무지는 죄라고 생각했다.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고 확고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알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얼마나 좁고 깊은 마음일까 싶었다. 그래서 눈에 애정을 가진 모루의 모습이 점차 결핍과 같이 뒤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는 곧은 심지로 느껴졌다.
햇빛이 눈에 반사되어 따갑게 눈을 깨물 때, 이월과 모루는 서로에게서 서로를 본다. 모루는 이월을 온 마음을 다해 이해해보려고 했으나, 난 진실과 속내를 숨긴 이월이 의뭉스러웠다. 그러나 수 년이 흐른 후에도 모루가 꺼낸 한 마디를 지니고, 유진의 품을 그리는 이월을 보니, 그저 황폐화된 세상 속에서 아직 속은 어리지만 겉만 훌쩍 커버린 어른아이가 보여 그가 느꼈을 우울과 고독이 전이되었다.
글을 읽다보면 모두의 정체성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중성적인 이름들, 특정 성을 구분할 수 없는 행동들, 날렵하게 찢어진 눈매와 같이 비슷한 외형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기억들이 얽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막막한 결말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주인공들에 어떤 상황을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다. 크게는 팬데믹, 가깝게는 독자 각각의 불안했던 10대나 20대. 우리는 우리여서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그저 10대, 20대기에 미완전한 것이라는 생각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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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드라이브(오늘의 젊은 작가 31)(양장본 HardCover) 출판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