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저 선은 뭔가 싶었다. 알고보니 <관통>에 나오는 루초 폰타나의 그림 <공간개념>을 표현한 것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을 펼치는 것이 마치 <관통>의 서술자 미온이 그림 속 환상으로 걸어들어간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총 8개의 단편으로 이뤄져있다. 사실 처음 책을 펼쳤을 땐 작가 특유의 장문체에 적응하기가 좀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마치 실제로 말하는 것 같이 긴 호흡에 독특한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각각의 단편은 현실을 묘사하지만 거의 판타지 같다. 분명 나오는 인물들은 어디선가 봤을법한데, 이야기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옛날에 어디선가 소문의 소문을 거쳐 주워들었을 법한 그런 ‘불가해’한 이야기. 특히 <이물>의 이야기가 중간에 뚝 끊기며 끊났을 때는 내가 괴담집을 읽고 있는지 소설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만큼 으슥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아니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 모호함은 책의 마지막 챕터에 나온 해설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되었다. 바로 이 책 전체가 ‘돌봄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사회복지사, 콜센터 직원, 주부, 경비원, 비서 등 모두 누군가를 돌보거나 보살피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남을 돌보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린 나머지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초등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를 다니는 나에게도 언젠가 저런 일이 일어나버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듦과 동시에 그렇지 않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서처럼 손에서 초록색 덩굴이 자라나진 않을지.
책의 주제를 관통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이다. <어디까지를 묻다>에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콜센터 직원이 한 말. “그런데 어디까지 가야 그 길이 내가 가려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사람은 알게 되는거죠? 어디까지 갔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심연에서 가장 단순하며 온전한 것 하나를 발견하고 비로소 되돌아올 여지를 찾을 수 있거나, 아니면 되돌아올 길이 없어 그대로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버리게 되는 걸까요?” 정말 어디까지 가야 알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나만은, 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알게 되길 막연히 바라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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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출판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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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2014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출판 민음사노인의 고독사라는 진중한 주제를, 해학적인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기에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더보기
그러나 사견으로는, 이런 참신한 소재로 이야기를 영민하게 풀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별점 하나를 뺐다.
또한 아무리 14년도 작품임을 감안해도 곳곳에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불필요한 묘사가 시대 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또 별점 하나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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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노인'은 70세도 훌쩍 넘은 독거노인이다. '독거노인' 하면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주인공은 조금 독특하다. 이야기는 노인이 미로같은 달동네길을 걸어가며 시작된다.
독자인 나는, 독거노인을 제재로 한 소설이라는 배경지식을 갖고 있었으니 '주인공은 달동네에 혼자 사는 노인이구나. 가난하고 쓸쓸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노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럴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듯 내 예상을 깨뜨렸다. 그의 집은 달동네를 벗어난 큰길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에 젊은 시절에는 한 기업체의 사장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며 겉보기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안락한 노후를 즐기는 독거노인이었다.
노인의 또래 지인들은 모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러나 노인은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병든 구석 하나 없다.
아내는 죽었고, 자식인 아들 셋은 오직 노인의 재산에만 관심을 보인다. 그나마 연락을 하는 이는 이웃인 미혼모 '진'과 노인의 집을 오가며 가정부 일을 하는 '덕' 뿐이다.
이야기는 노인이 죽기 몇 달 전 만났던 사람들과, 그에 얽힌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의 투박한 말투 때문에 전반적으로 냉소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후한 인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 무리에게 시가를 나눠주고, 동네 일군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동네에서 행패를 부리던 신문 보급소 사장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등. 그러던 와중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유부남과의 아이를 낳은 이웃 미혼모 '진'과 노인 간의 감정선이 주축이 되면서 소설의 흡입력이 증폭된다. 아내와의 사별과 또래 친구들의 부재로 인해서일까. 감정의 교류에 은근히 목이 말라있던 그는 진과의 사랑을 꽤나 진중하고 낭만적으로 여긴다. 진과 그녀의 자녀, 그리고 노인 자신. 이 셋이서 모나코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노인은 이내 생각을 바꾼다. 가정부 '덕'의 가족들을 모나코로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치매를 앓던 노모를 돌보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가정부 일을 하던 덕은 어머니를 여읜다. 이를 듣고 노인은 덕, 덕의 딸 그리고 손녀 이 셋에게 모나코 여행을 선물한다. 그리고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된 노인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친구가 생전 부탁했던 고양이 2마리와 함께 눈을 감는다. 결국 그의 시신과 장례는 두 달이 지나서야 완전히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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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인 복지는 소위 선진국으로 일컫어지는 유럽권 국가들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이렇게 복지가 부실한 국가에서 유복한 노년과 안온한 죽음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노인은 가정부, 자식들, 심지어 노후 자금도 충분했지만 고독사를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작품 내에서도, 그의 죽음을 극적인 묘사 대신 짧고 건조하게 전달한다. 그렇기에 더욱 씁쓸하고 안타까운 결말이다. '고독사'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환부와 한 인생의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세심하고 포용적인 문학작품을 바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인지력이 떨어지는 묘사 (노인이 고용한 인부들이 집 앞 눈길을 치울 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비탈길을 오를 때면 인부들이 치운 눈을 다시 쌓아버리곤 한다. 이를 보며, 노인은 인부들에게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노인의 입체적인 성격을 서술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했을까)들을 읽으며, 작품의 몰입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또한 '고독사'에 국한하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주제를 보여줄 수도 있었겠다는 기대감과 실망감이 동시에 남는다. 노인의 죽음과 주변 인물들의 변화를 어떻게 마무리 짓느냐에 따라 주제를 '삶과 죽음의 의미'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의미로 확장시킬 수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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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매체에서 흔히 묘사되는 독거노인의 이미지 -빈곤, 자녀들의 방임, 열악한 환경 등-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일까. 부유하고 건강하며,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듯한 냉소적인 노인이라는 주인공이 참신했다. 이런 신선한 소재가 마음에 들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허위허식 없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고 진솔하게 전달하는 개성넘치는 '노인'. 그를 통해 작가는 '독거노인=불쌍하고 빈곤한 사람'이라는 나의 얄팍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 그러면서도 노인의 근본적인 외로움과 삶의 허무함, 비극적인 고독사를 덤덤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 가치있는 소재를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결말 탓에 작품에 더 미련이 남는다. 언젠가는 더 따뜻한 마음의 울림을 전해줄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몬순(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2014년) 출판 문학사상말하자면 나는 문학 편식가다. 명확한 스토리와 상황 설명 없이 애매모호한 감정과 표현들이 뒤섞인 문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예를 들어 아서 코난 도일 경의 <버스커빌 가의 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 만에 후딱 읽었다. 적당한 복선과 궁금증 유발, 선명한 인물 및 배경 묘사, 모든 의문을 해소시키는 결말, 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잇는 작가의 필력.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책, <무의미의 축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견디며 읽었지만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고, 아파트가 주 배경인 것만 알겠고 주문 같은 그들의 대화와 묘사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게 너무 싫다. 어느 정도의 상징과 비유는 도전할 만하지만 작가가 휘갈기는 난잡한 감정과 묘사는 도무지 질색이다.더보기
내가 더 싫어하는 것은 ‘현실에서 절대 쓰지 않을 형태’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다. 특히 요즘 쓰인 한국 소설에서 눈에 띤다. 문어체로 쓰임을 고려해도 소설이 동시대 한국의 일상적 상황을 묘사한다면 일상 언어의 틀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고 소통하지’라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를 예로 들어보겠다. 일상을 배경으로 다루는 영화의 경우, 사람들은 ‘리얼리티’에 집중한다. 얼마나 그럴듯하고, 현실감 있게 현실을 묘사했느냐를 중점 포인트 중 하나로 고려한다. 백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정말 백수 같이 연기를 하면 사람들은 감탄하고 그 연기에 빠져든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멋있는’ 백수보다 ‘백수 같은’ 백수를 원한다. 그 편이 훨씬 잘 몰입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실에서 사람들이 행동할 법한 모습이 아닌 ‘문학적인’ 행동을 보여서 몰입이 확 떨어졌다(오해는 하지 마라! 세련된 문학적 묘사가 싫다는 게 아니라 현실에선 보기 힘든 ‘문학적 어투와 행동’이 싫다는 거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과 갈등이 주제라는 건 알겠다. 그걸 아파트 정전과 엮은 것도 알겠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등장인물에 공감할 수 없었고 어떤 재미나 특출한 감상을 얻지 못했다. 내가 <몬순>을 읽고 느낀 점은, 앞으로 이런 류의 책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
천 개의 파랑 출판 허블우리의 문명은 어디로 나아가는가?더보기
가끔 푸른 하늘 너머로 비행기가 흰 획을 그으면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떠올린다. 계몽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였는가? 인간의 진보는 어떤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가?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만(萬)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고민 끝에 도달하게 되는 문장은 늘 같았다. "가장 선한 것은 무릇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어야 한다.(Das beste solte das liebste sein.)",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이 말을 천 개의 파랑이라는 소설은 완벽하게 표현했다.
SF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흔히 스페이스 오딧세이, 로봇으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와 같은 것들을 떠올리기 쉽다. 찬란해져 가는 문명 속에서 인간성은 말라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천선란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근본이 있노라고. 사랑이라는 능력이 실은 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었다고.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고.
우리의 문명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직 나는 정답은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사랑만은 남아있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 -
미움받을 용기 출판 인플루엔셜단언컨대 내 인생은 미움받을 용기를 읽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항상 모든 인생에서 인간관계에 가장 힘들어하고 어려워 했던 나는, 어째서 다들 행복하게 잘 어울리는 관계들에서 나만 이렇게 유독 힘들고 괴로운걸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명쾌하게 말하는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는 말이 참 위로가 되었다. 아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애초에 힘든 것이 맞구나. 라는 아주 당연하고도 사소한 위로.더보기
그렇지만 역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구절은 '나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말이었다. 항상 내가 준 애정과 노력 만큼을 상대에게서 돌려받지 못하면 '왜 저 사람은 나를 저렇게 대할까', '나는 ~ 했는데 왜 저 사람은 나를 ~하게 대하는 걸까'등으로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그렇지만 내가 좋게 대하는 것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과제.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한 것은 상대방의 과제. 그러므로 상대에게 돌아오는 반응을 기다리며 기뻐할 필요도 , 슬퍼할 필요도 없으며 나는 내 과제를 충실히 하는 것으로 끝.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타인의 과제는 내 영역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자. 이 간단명료한 내용이 나에겐 참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와같이 인간 관계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한다.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