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그림 감상이 마치 덕통사고와도 같다고 한다. ‘덕통사고’란 우연한 기회에 특정한 대상, 장르, 인물에 강렬한 호감을 느껴 마니아, 덕후가 되는 일을 뜻한다. 작가의 말대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화가 모두를 만날 필요는 없다. 마치 방송에 출연하는 모두를 알고서 좋아하는 일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일이다. 우연히 듣기 좋은 노래를 만난 후 그룹에 관심이 생기고, 비슷한 장르를 찾아보며 유사성을 찾아보다 또 다른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그림을 감상하고 배우는 일도 똑같다고 말한다. 강렬한 끌림이 오는 그림 한 점에 푹 빠지고, 화가의 생애가 궁금해지고, 그 시대 그림의 특징을 찾아보는 일은 정답이 정해진 미술 사조를 외우는 일과 비교도 할 수 없다. 작가는 이와 같은 흥미롭고도 재밌는 그림 감상을 시작할 장소로 미술관을 활용해보라고 권유한다.
미술관에 대해 논하고,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그림을 감상해보라는 권유를 넘어서면 마치 어린 시절 풀던 학습지가 생각나는 작품 감상 면이 나온다. 보통 미술관에 가면 작가의 생애나 작품 설명에 중점을 두며 살펴보지만 이와 달리 책에서는 저자가 그림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를 살펴보는 단계에 도착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물음에는 모든 말이 정답이라, 하나하나에 찬찬히 답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 이를 직접 펜으로 종이에 정리하면 점점 더 내 감정과 경험이 명확해졌다. 물론 과거 그때 느낀 감정 그대로라기보다 현재의 내가 과거에 가진 감상에 가까웠지만, 거기에 몰입하고 추억하는 나를 만나는 일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마음에 가는 그림부터 시작하려고 살펴보다 정한 그림은 펠릭스 발로통의 〈공〉으로, 책의 띠지에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작성한 내용의 사진을 아래 첨부한다. 책 제목을 검색하면 그림이 게재된 블로그를 쉽게 찾을 수 있으니, 혹시라도 시간이 있다면 그림을 봐주었으면 한다. (제2전시실 첫 번째 그림)
해당 그림의 질문은 그림에서 보이는 사실을 나열함에서부터 출발하여 아이의 감정을 추측해보고, 아이와 비슷한 나의 경험과 감정을 살펴본 후, 그 기억을 각별히 여기는 점은 무엇인지, 지금도 소중하게 느끼는지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여태 깨닫지 못했던 열망을 발견했다. 그림으로 나의 내면에 존재하던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일은 참으로 신비로웠는데,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분명 내 안에 존재하지만 말로 옮기기는 어려운(혹은 옮기고 나면 누추해지는) 미묘한 감각과 감정을 눈앞에 펼쳐줍니다. (중략)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가 까만 공간에 보이지 않는 물결을 만들어냈을 때 마음 안에서 벌어졌던 일을 옮겨낼 수 있는 단어를 저는 갖고 있지 못해요. 하지만 그림은 속삭입니다. 네가 그때 접속했던 세계가 어디인지 내가 알고 있어, 라고. (p. 106)
띠지를 보면 원본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바로 아이가 쫓는 공이다. 작가는 공을 몰입감이라 하며, 아이가 가진 어른과 공유하지 않을 자기만의 느낌, 충동, 비밀이라고 본다. 그림 전체를 넣기에도 충분한 공간에 왜 공을 잘라냈을까? 아마도 공을 쫓아가듯이 책을 넘기며, 독자가 몰입을 느꼈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아닐까. 팁 하나를 말해주자면,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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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의 미술관(자기만의 방 Room No 601) 출판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