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로 태어나서 작가 한승태 출판 시대의창 사번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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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과 돼지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시장에서 보는 고기가 떠오르는가? 아니면 동물 자체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나의 경우 닭과 돼지는 당연히 동물이고, 고기로 도축된 모습보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한, (쉽게 말하자면) 멀쩡하고 좋은 모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제목은 공장식 축산에서 닭과 돼지는 얼른 자라고 살쪄서 도축 당할 고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비건을 지향하고 있어서 실제 어떤 과정에서 고기가 생산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솔직히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의무감이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닭과 돼지 그리고 개 농장에서 일하며 실제 현장의 모습을 가감 없이 적어냈다. 그중 닭의 경우, 특히나 달걀이 생산되는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평소 비건을 지향하면서도 달걀은 포기하기 어려운 식자재 중 하나였다.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달걀은 고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직접 생명을 죽이는 과정이 없으므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저자가 기록한 산란계 농장의 모습은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일부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나마 3마리가 적합한 (가정용 전자레인지 크기의) 케이지에 4마리를 넣은 사례가 나왔다. 좁은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닭들은 몸을 비틀었고, 결국 가장 약한 개체가 아래에 깔려 서서히 죽어갔다. 위에 있는 닭들은 자리를 잡기 힘들기에 발톱으로 할퀴고, 좁은 공간에 스트레스를 받아 피가 날 때까지 서로를 쪼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수십 마리씩 폐사했다고 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지만 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알을 빼는 산란계 닭이 태어나는 달걀을 생산하는 종란계 닭이 따로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달걀 상태일 때 병아리의 성별은 알 수 없고, 달걀은 암탉만이 낳는다. 산란계 닭으로 쓰이지 못하는 수평아리는 모두 살처분된다는 소리이다. 산란계 수평아리는 고기를 위한 육계와는 달라 자라는 속도가 느리고, 사룟값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한다. ‘고기가 아니라서 괜찮아, 닭을 죽이지 않고 부산물만 얻기 때문에 괜찮아’라는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달걀을 얻기 위해서 수평아리를 죽여가며 암탉을 길러내는 과정에 동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도축되는 동물이 공간의 감옥뿐만 아니라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해결책이 없는 난제처럼 느껴진다. 공간의 감옥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동물이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잠드는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식용 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죽는 시기가 결정된다. 본격적으로 품종 개량이 이루어지기 전엔 도축 적정 무게에 도달하기까지 닭은 3개월, 돼지는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흔히 보이는 (삼계탕 한 그릇에 들어가고, 치킨으로 사용되는) 육계는 도축하기까지 딱 한 달이 걸린다. 그마저도 성장이 더딘 개체는 상품성이 없기에 중간중간 죽여서 처리한다. 무사히 잘 자란다고 할지라도 산란계의 수평아리보다 한 달을 더 살 뿐이다. 생산비와 맛이 문제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 만약 고기를 먹는 인구의 수가 줄어든다고 해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값비싸고 질긴 고기를 받아들이게 될지 의문이다.

    그러나 완벽한 해결책이 없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저자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선을, 식탁의 영역에선 개고기에 그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채식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일반적인 식량의 맥락에서 사라진 개라는 동물부터 구제하자는 주장이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개의 경우 식용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농장의 환경이나 사료에 전혀 규제가 없어 뜬 장에 짬밥을 먹여 기르고, 도축할 때도 전기로 기절시키는 최소한의 형태도 갖춰지지 않았다. 책의 사례에선 밧줄로 매달아 죽이거나 전기 충격기로 지져 죽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세대가 바뀌면서 개고기의 수요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나만 해도 전혀 개고기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반려동물과 사는 가구의 수가 늘면서 개와 고양이를 고기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또 무엇이 있을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모습에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쓸모없다는 이유로 갓 태어난 동물이나, 살찌지 않아 상품성이 없는 동물을 죽여도 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존재해왔으나 눈길을 돌리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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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에 티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를 도축하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었는데 우선 소를 도축할 때 소의 입에 기다란 호스를 꼽고 살아있는 상태로 물을 쏩니다. 그렇게 되면 일단 소는 기절을 하고 우리가 육즙이라고 부르는 물들로 지방이 채워집니다. 그렇게 소는 살아있는 채로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의 소의 눈은 눈물이 맺혀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고기는 매우 흔하고 자주 먹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어떻게 도살이 되고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육식을 줄이고 적정 양만 먹는다면 그런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동물을 도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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