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소가 반추하듯, 씹으면 씹을수록 진한 맛이 느껴지는 책들이 있다.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담론’이라는 책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지는 3년쯤 되었지만, 가끔 힘들거나 중심이 흔들릴 때 다시 펴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님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때쯤 동아리에서 읽었던 ‘강의’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한문학의 매력에 빠져서 한 동안 논어, 주역 등 한문학 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했었다.‘강의’가 동양고전을 통한 정신적 깨달음을 담았다면, ‘담론’은 삶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그만큼 자간 사이의 깊은 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나무를 뚫어지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했나 하는 우려도 든다. 하지만 그냥 보이는 데로,나무를 보았다면 나무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1부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이다. ‘고전’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강의’가 떠올랐다. 하지만 ‘강의’만큼 고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고전보다는 세계 인식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먼저, ‘시(詩)’에서 시작한다. 굴원의 ‘어부’라는 시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현실과 이상, 보통 좌를 이상, 우를 현실이라 한다. 좌와 우는 양극화된 개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는 좌를 현실에서 동떨어졌다고 비판하고, 좌는 우를 부패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현실과 이상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실이 곧 이상이고 이상이 다시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뒤쪽에서 언급되는 유가의 화동 담론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좌와 우는 같지는 않지만 떨어지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화(和)의 논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쌍의 수레바퀴가 평생 만날 일은 없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듯, 좌와 우도 단순한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서로 상생하는 방향을 추구하면 좋겠다.
다음은 주역이다. ‘강의’를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아직도 위, 비, 응, 중 이런 것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신영복 선생님께서 주역에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대충 알 것도 같다. 역은 변화이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해바라기는 해가 있는 방향에 따라 꽃의 방향이 변하지만, 이 변화는 계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내용의 시를 본 적이 있다. 역의 원리가 나름 잘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작은 세계인 절제 속에서 우리는 다른 것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겸손을 통해 이 관계 속에 존재한다. 책에 나와 있는 주역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아직 그 일부의 일부뿐인 듯하다.
공자, 맹자가 떠오르는 유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윤리 시간마다 정말 많이 배웠다. 여기서는 신영복 선생님께서 중시하는 가치 중 하나인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 인간과 국가 간의 관계 등이 있다.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는 인의, 인(仁)은, 사랑이고 의(義)는 호연지기와 관련이 있다. 책에서는 인의예지와 같은 사단 이전에 사람과의 지속적이고 깊은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로는 앞서 언급했던 화동 담론이 있다.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이 문장을 보면 떠오르는 이슈가 있다. 바로 시리아 난민 문제이다. 비록 몇 년이 지났고, 이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아직 현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로 유럽에서 사회적 이슈거리가 되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말이 있었다. 단순한 연민으로만 해결되지 못하는 이 문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동(同)이 아니라 화(和)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준다. 해안가에 떠밀려 내려온 아이의 사진을 볼 때면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움을 느낀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를 따지기에는 매우 많은 개인의 입장이 있기에 한 마디의 말로 결론짓기는 어렵다. 단지, 힘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국제 사회가, 수많은 난민들을 만든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더 미래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은 것 같다.
2부는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과정에서 했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과도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글귀 하나를 적어 본다.
-곤히 잠들어 있는 가슴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 문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그림입니다.(담론 276p/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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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출판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