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가 세월이 지난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와 쌍둥이 이모의 모습이다. 그들은 만우절에 함께 태어났지만, 만우절에 각기 다른 남자와 이룬 결혼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안진진의 엄마는 술을 마시고 폭력을 일삼던, 지금은 행방불명된 남편을 둔 억척스러운 시장 상인의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안진진의 이모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품위 있고 감성 넘치는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안진진은 25세의 나이로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할까’라는 인생 최대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선사하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불행과 엄마, 이모의 비교되는 삶을 바라보며 그녀는 서서히 마음의 결정을 내려간다.
이 책은 1998년에 발간되었다. 작가 양귀자는 우리에게 ‘원미동 사람들’을 쓴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원미동 사람들은 원미동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을 엮은 책이라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는 긴 호흡의 장편 소설이다. 양귀자는 책 말미의 작가 노트에서 이 책 ‘모순’은 독자들이 부디,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호흡을 끊어 싣는 형식의 연재 소설처럼 마감일이 정해진 채로 쓴 글이 아니라, 본인이 책의 결말을 낼 때까지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로 완성된 첫 장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문장들은 살아 숨쉬는 ‘안진진’이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일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윗 세대 어머니들이 겪은 가정의 상황에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고, 안진진의 삶을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이 발간된 시대까지 중매 결혼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가부장적인 집에서 부모님이 선택한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한 사례는 지금 우리의 부모님 중에서도 꽤 많을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참 많이 변화했다.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하는 사람과 무조건 결혼하는 일은 당연히 없으며, 애초에 결혼 자체를 필수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결혼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전보다는 자유로운 가치관이 널리 퍼진 2020년의 대한민국에서 만약 책 속의 ‘안진진’이 살고 있다면, 엄마와 이모를 보며 ‘어떤 남자와 결혼할까’보다는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먼저 주목하려 하지 않았을까? 책 속의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친다.
p.42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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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양장본 HardCover) 출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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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 \'원미동 사람들\'을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그려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참 정겹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모순\'을 양귀자 작가님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꼽으시길래 궁금했는데 이렇게 리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가부장제와 여성의 삶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책일것같아요. 저도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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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서 기억에 남는 두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책의 핵심 소재를 말하는 부분인데요, \'같은 날에 태어난 쌍둥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문장을 보고 책이 어떤 내용일까 정말 궁금해졌답니다! 두 번째는, 안진진이 2020년에 살고 있다면 어땠을지 예상해 보는 대목이었습니다. \'\'어떤 남자와 결혼할까\' 보다는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주목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이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루이보스님처럼, 책의 등장인물들이 2020년 이었다면 어떤 생각과 행동을 중점에 두었을까를 생각해보며 글을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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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잘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결혼을 통해 달라지는 이모와 엄마의 삶을 분석하고 자신 또한 결혼을 통해 어떻게 삶이 바뀔까를 계속 고민합니다.그러게요, 본인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은 빠져있는 것이 안타깝게 보입니다. 2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니만큼 현재적 관점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