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주변에 있을법한, 혹은 보기 어려운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러 인간군상에 대해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모두에게 공감이 가지는 않고, 오히려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이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대리체험하고 사유해 볼 수있다. 이는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는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생의 한가운데’는 등장인물의 개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소설이다. 특별한 줄거리라기보다는 주인공 ‘니나 부슈만’의 삶을 그려내는 방식을 취한다. 작가가 탄생시킨 ‘니나 부슈만’이라는 인물은 문학계에서 기념비적인 인물을 몇명 뽑으라면 항상 손에 꼽힐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녀의 생에 대한 사랑과 집념은 평온하고 치열하지 않은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이 책은 독일 전후를 배경으로 재능있는 작가이자 매혹적 생기로 가득한 ‘니나 부슈만’과 그런 그녀를 10년이 넘도록 지켜보며 사랑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니나는 지금까지 읽은 어떤 소설의 주인공보다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생’에 대해서 탐구한다. 전후 시대의 여성작가로서 굴곡진 삶을 살아내는 그녀에게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로 작정한다. 그것이 그녀가 생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슈타인 박사는 그러한 니나를 알아보고 어쩌면 니나 자신보다 더 그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일하게 니나와 영혼적 교감을 나눈다. 그러나 니나는 슈타인 박사의 곁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따라서 슈타인은 니나의 인생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필요할 때에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에 그치고 만다.
읽는 내내 슈타인 박사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솔직히 짜증스러웠다. 니나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결국 여느 사람과 다를 것 없이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슈타인 역시 니나는 그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머리와 마음의 판단이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니나를 포기하면서도 그녀에 대한 질투와 소유욕으로 망가져간다. 이러한 슈타인 박사를 보면서 인간적인 감정이 이토록 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책은 평범하고 안락하게 주부로서 생활 하고 있는 니나의 언니가 슈타인과 니나가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장을 읽으면서 느끼는 소회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관찰의 방향은 크게 니나의 언니 -> 슈타인 ->니나 , 니나의 언니->니나 이다. 그렇다면 슈타인이 니나를 관찰하는 부분만 다뤄도 될텐데 작가는 왜 전혀 연관이 없는 니나의 언니를 등장시켰을까? 나는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야 이러한 서술 방식이 작가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언니가 자신의 삶과 니나의 삶을 비교하며, 평범한 자신의 인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 가서 언니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삶의 몫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를 통해 작가는 니나의 파란만장한 삶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진실된 태도로 임하며 살아간다면 재능이나 운명의 여부와 상관없이 ‘생의 한가운데서’ 살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삶이 무의마하게 느껴질때, 자신의 삶에 어떠한 각성이 필요할 때 읽기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