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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전집 출판 문학과지성사더보기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포도밭 묘지 1>이라는 시에서였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 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으면 온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것 같다. 정말로 사무치게 외로운 느낌이 든다. 기형도 시인은 향년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무엇이 그렇게 외롭고 슬펐을까 그의 삶의 무게와 깊이를 가늠해보게 된다. <대학시절>이라는 시의 내용을 읽으며 당시의 시대와 그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인의 생각과 삶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의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에 동지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이름을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기형도의 작품을 읽으며 이름을 익힌 작가입니다. 제가 몇 알지 못하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기형도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쓸쓸함이 그의 작품에 더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기형도 작가의 \'정류장에서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데, \'멈춤\'의 의의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다른 기형도의 작품도 한 번 읽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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