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는 그저 그랬는데 오디세우스가 나오는 후반부부터는 단숨에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중간 정도 읽고나서 생각했던 결말이 정말로 결말이어서 너무 놀랐다. 그만큼 개연성 있다는 뜻이었고 그게 '맞는' 결말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글을 어느 정도 쓰다보면 작가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글을 쓰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때부터 흡입력이 생기고 이야기의 질서가 바로 선다. 나는 책을 읽으며 그런 부분을 찾아낼 때 마법에 걸린 기분이 든다. <키르케>의 주인공이 마녀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신화 속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겁탈당하고. 당하기만 하는 소유물로 여겨졌던 님프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랬던 키르케가 미지의 힘을 손에 넣고 위대한 영웅들보다 위대해졌을 때 그 여자는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헬리오스의 가장 보잘 것 없던 딸이자 님프가 어떻게 위대한 아이아이에(Αἰαία)의 마녀가 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모든 인물들의 양면적인 모습을 다룬다는 것이다. 신의 광휘와 잔인함. 지혜와 욕망과 명예. 권력을 손에 쥔 남자가 어떻게 변하는지, 파워게임을 하는 연인이 어떻게 상대를 유희거리로 삼는지, 마녀의 아들이 어떻게 반항하게 되는지. 나는 키르케가 남자를 돼지로 만들어버린 것을 십분 이해한다. 모든 것에는 맥락이 중요하다. 나는 마녀가 주문을 외울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카타르시스는 "정화"라는 뜻이 있다.
글라우코스도, 헤르메스도, 다이달로스도, 오디세우스도, 심지어는 그의 아들인 텔레고노스도 키르케를 떠났지만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만은 남았다. 그는 아버지처럼 명예와 지략을 쫓지도, 권력과 전쟁과 지평선 너머의 세계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는 앞마당의 흔들리는 판석을 고정하고 양의 털을 빗기고 다리 높이가 맞지 않는 탁자를 손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키르케의 곁에 남을 수 있었다.
엑스트라를 주연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심술궃은 마녀라고 생각했던 키르케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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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출판 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