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스푼의 시간 작가 구병모 출판 위즈덤하우스 tree147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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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등 평소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제목보다는 저자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산뜻한 분위기의 표지와는 달리 이 책은 조엘 가로의 <급진적 진화>에 나오는 다음의 대목-'우연히 세탁소에서 일하게 된 로봇'과 '세탁소를 찾아오는 손님들' 그리고 '세탁된 옷 속에 씨앗을 넣어주는 로봇'-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소설을 흥미롭게 구성하고 있다.

    골목길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명정'은 어느날 의문의 커다란 택배를 받게 된다. 문제는 그 택배를 보낸 사람이 8개월 전 비행기 사고로 죽은 아들이라는 것이다. '명정'은 어쩌면 아들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며 탑승객 명단은 전산상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접어둘 수 없지만, 골목길에 살고있는 영문과 '세주'의 도움으로 외국 회사에 전화를 걸어 아들의 사고사를 확인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열어본 택배 속에는 17세 가량의 소년의 외형을 한 로봇-'은결'-이 들어있었다.

    '명정'과 함께 골목길 세탁소에서 지내게 된 '은결'은 사람처럼 모든 것을, 느낀다는 명확한 인식도 없이 일일이 학습해야 하고 연산의 결과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새로이 입력해야 하는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에 살고있는 '시후', '준교' 그리고 '명정'과 생활하며 점점 가벼운 충동이나 변덕 비슷한 행위를 보여주며 로봇도 감정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비로소 은결은 깨닫게 된다.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기에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 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아무리 약품을 집중 분사해도 직물과 분리되지 않는 오염이 생기게 마련이듯이,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제거도 수정도 불가능한 한 점의 얼룩을 살아내야만 한다. 부주의하게 놓아둔 바람에 팽창과 수축을 거쳐 변형된 가죽처럼, 복원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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