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의 경험을 담은 장이 가장 유명한, 편하게 쓰신 것이 읽으면서도 느껴지는 에세이인데, 여행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나는 다른 장들이 마음에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두근거림이 정말로 그립다. 안타깝게도 3년 전 문화교류 프로젝트로 인해 고등학생 때 프랑스에 잠시 다녀온 게 전부다. 한창 우울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시기에 다녀온 프랑스는,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한적한 시골 마을 디종과 아름다움이 넘실거리는 파리의 골목은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었다.
‘중국은 그가 처음으로 가본 외국이었고, 젊은 날의 환상이 깨져나간 곳이었다. (중략)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과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내게 여행은 무엇일까. 좋은 기회로 선발되어, 그렇게 목매던 모의고사마저도 뒤로한 채 떠났던 프랑스는 내 인생의 향로를 미묘하게 틀어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인연들을 만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느 곳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 성차별, 인종차별을 당함으로써 내가 앞으로 헤쳐나갈 현실을 직시하기도 했으며, 나는 무엇을 목표로 두어야 하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이다.’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마 이때의 집은 내 거주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을 만한 장소를 말하는 것 일터다. 그래서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자유롭고, 오히려 그곳이 안락한 집인 듯 느껴지는 거다. 발상과 지혜는 무게가 없다. 무형의 자산을 가지면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어딘가에 붙들려 있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바깥의 무게는 줄이고 내 안의 무게는 쌓아 묵직한 사람이 되어야,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이 될 수 있다.
지구는 우주의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떠 있는 작고 외로운 구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구슬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곳이며,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다. 인류 최초로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했을 때, 우주비행사들은 어떤 감정으로 지구를 바라보았을까. 한없이 작은 스스로를 깨닫고 삶에 더 큰 애정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인류를 지구의 승객이라고 말한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만큼,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 도착하는 승객들을 안내하는 현지인이 될 차례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이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갈 때, 남아있는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송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문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배웅하듯이 망자를 대한다.’
‘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 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오디세우스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 오디세우스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의 결핍으로 조망.
+@ 카프카적 kafkaesque
당신이 알던 모든 것들, 행동반경과 행동방식, 계획 등등이 다 틀어지기 시작하는 초현실 세계에 들어서서는, 그 동안 세계를 인식하던 방식이 아닌 뭔가 다른 힘을 강제하는 걸 느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