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지는 좀 됐다. 그런데 고전이나 명작이라고 이름난 도서가 아니면, 유행 따라 보여주기 식으로 책을 읽는 속물적인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이 책을 피하고만 있었다. 대략 감정이 없는 소년에 대한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랑 인연을 맺게 됐는데, 그래서 이 책에 호기심이 일었다.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있었다.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다.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이 개연성이 깊은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오히려 막장 드라마의 각본을 읽는 느낌이었다.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한국 젊은 작가들의 책이 거의 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서 아쉽다.
요약하자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 가족의 죽음에도 덤덤하다가 자신에게 슬픔을 알려주려는 친구와 좋아하는 여자애 덕분에 감정을 되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가 눈 앞에서 칼에 찔려 죽어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고작 자기 취향인 여자 아이 하나 봤다고 사랑을 알아가는 게 우습다.
p40. 엄마는 모든 게 다 나를 위해서라고 했고 다른 말로는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엄마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p50.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 사이도 비어 있ㄱ 줄과 줄 사이도 비어 있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 수도 있다.
p176.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내가 얼마 전에 소중한 사람한테 편지를 쓸 때도 했던 말이라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내 입에서 나와서 그 사람에게로 갔을 때, 우리만의 파동이 전해지니까 모든 사랑은 남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