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에 태어나서 작가 정주영 출판 전설적인 존재 님의 별점
    4
    보고 싶어요
    (0명)
    보고 있어요
    (0명)
    다 봤어요
    (1명)
    정주영 회장의 삶은 한마디로‘도전’이었다. 우리는 이루기 쉬운 일에 뛰어드는 것을 도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달려드는 것,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하는 걸 도전이라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한 번뿐이었다면 운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그는 생애 내 몇 번씩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정주영 회장은 성공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았고,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다였다. 특별한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세상엔 대학 공부까진 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무식한 놈이 잘 되면 얼마나 잘 되겠는가?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삶이 그들에게 삶의 가장 막강한 적수를 대적케 한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삶을 경외한다.” 확실히 정주영 회장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은 점은 차치하더라도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정주영 회장의 강인함에 감탄한 일화는 ‘아도서비스 수리 공장 화재 사건’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갖은 고생을 하며 겨우 차린 사업장이다. 계약한 지 한달도 안 돼 공장이 모조리 불탔는데 울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정주영 회장은 신세 한탄을 하며 소주 병나발을 부는 대신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좌절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의지로 그는 보란듯이 우뚝 재기했다. 나는 정주영 회장이었으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도저히 일어서기 힘든 어려움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무릎을 꿇고 자신을 놓아버리느냐, 포기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다시 일어서는가.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정주영 회장은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실패 속에 좌절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과 함께 그의 심장에는‘성실’이라는 엔진이 내장돼 있었다. 보통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더 하려야 더 할 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치밀하고 집요하게 물어뜯고 곱씹어보고 되짚어보는 그의 태도는 쌀가게를 운영할 때건 ‘현대’를 경영할 때건 올림픽 유치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로 만들어준 힘이다. 그 자신이 배운 게 없고 경험이 부족하고 자본이 부족해도, 항상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배로 비유하자면, 어떤 풍랑을 만나도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의 ‘나침반’과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성실함의 ‘엔진’, 폭풍우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돛’처럼 펄럭이는 불굴의 정신. 나는 정주영이라는 선장이 평생 이 세 가지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업적들이 모두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목표는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목표가 크면 클수록 과정에서 얻는 배움의 결이 달라지고, 성취했을 때 얻는 기쁨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항상 정주영 회장이 한국의 여러 기업가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히는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는다.

    서울로 상경했을 때 그의 꿈은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적어도 시골에서 농사지을 때보다 풍족하게 사는 게 그가 서울로 올라온 이유였다. 사업체가 커지고 만지는 돈의 액수가 불어나며 점차 품는 꿈도 커지기 시작한다. 이젠 단순히 돈을 잘 버는 게 아니라 우리 기술로 우리 제품을 수출해 우리 민족이 잘 사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정주영 회장이 눈앞의 이익만 생각했더라면 현대자동차 초기 GM과 기술 합작 계약을 할 때 애써 현대의 지분을 늘릴 필요는 없었다. 상대방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만 하면 독자적인 개발은 할 수 없지만 제법 큰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항상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과 민족을 생각했다. 사방에서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도 나라에 도움이 되니까 소양감 댐 공사 설계에 이의를 제기했고, 서울시장까지 포기한 88올림픽 유치를 위해 직원들을 데리고 온종일 뛰어다녔다. 우리 기술을 갖는 것이 민족이 살길이라 생각했던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그뿐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위해 복지사업으로 ‘아산재단’을 설립했다.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며 소 1001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넘었다. 이 모두가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그가 한 일이었다.

    정 회장이 중요하게 여겼던 ‘신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주영 회장은 착실히 쌓아 놓은 신용 덕에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선 사람이다. 부둣가, 공사장에서 짐 나르다가 우연찮게 쌀가게에 취직했을 때 정 회장은 항상 무슨 일이든 전심전력을 다 했다고 이야기한다. 취직한 이튿날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 앞을 쓸고 물까지 뿌리는가 하면, 엉망으로 어질러진 창고를 쌀과 잡곡 등을 깔끔하게 구분해 정리해 놓았다. 누가 시키니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어릴 적 농사일을 할 때 익힌 성실과 부지런함 대로 일한 것이다. 내가 쌀가게 주인이었더라도 그 시절 정 회장을 신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최고의 결과가 나오도록 일하는데 믿지 않을 수 없다. 2년 뒤 쌀가게를 인수하지 않겠느냐던 제안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정 회장의 성실함이 신용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아도서비스 수리공장’에 불이 나 가진 것을 몽땅 잃었을 때도 돈을 빌린 영감에게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재기하는 것은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최악에 최악이 연달아 덮친 ‘고령교 공사’ 때도 정 회장의 신념이 빛을 발했다. 휴전 협정이 벌어진 해에 무너진 고령교 복구공사를 맡았지만 열악한 장비와 경험, 변동이 극심한 낙동강의 수심 차 그리고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때문에 정 회장은 많은 고생을 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 가장 혹독했던 시련으로 고령교 공사를 꼽았으니 얼마나 지옥 같은 상황이었는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불어나는 손해와 여기저기서 들이닥치는 빚쟁이 사이에서 정 회장은 무시무시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주변에서 공사를 중단하자고 말하자 정 회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힘들다고 여기서 포기해버리면 신용을 잃게 되는 것인데, 사업가에겐 신용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우, 매제의 집을 팔아 모은 돈으로 다시 공사에 달라붙어 지긋지긋한 고령교 공사를 완공시켰다. 벌어들인 돈보다 나간 돈과 빚이 더 많은 상황. 정주영 회장은 신용 하나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러나 고령교에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막대한 적자 속에서도 공사를 끝까지 책임지고 끝낸 현대를 정부가 높이 평가해 그 후의 정부 공사를 어려움 없이 맡을 수 있었다. 악몽 같았던 고령교 공사에서 교훈을 얻은 현대는 장비 개선과 보급에 힘써 다른 건설업체와는 차별되게 튼튼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일단 부지런하지 않으면 신용하지 않는다는 정주영 회장. 이러한 신념의 밑바탕에는 부지런함은 자기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라는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루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는 신념은 그의 일생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철저히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는 점이다. 부지런히 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정 회장이었기 때문에 특히 신용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신용이란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느냐’의 차원을 넘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자기 인생을 대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일단 부지런하면 인생을 성실하게 대할 것이고 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언뜻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신용을 제일로 생각하고 강조하던 정 회장이 이루어 낸 일들을 생각해보면 다시금 그 중요성이 마음 깊숙이 새겨진다. 기술도 경험도 자본도 없었지만, 연일 주변으로부터 불가능하다는 말만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었던 건 행동을 받쳐주는 불굴의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제일가는 부자가 아닌 세계 일류 기업에의 목표, ‘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할 수 있다는 무서운 신념,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낭비하는 것을 혐오하는 자세, 끈질기게 고민하고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다르게 접근하는 힘, ‘모험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는 믿음으로 가능성을 찾아 탐구하는 도전 정신. 이 모든 것들이 정주영이라는 인간의 정신에서 긍정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모두가 놀랄 만한 업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는 정신과 지치지 않고 성실한 행동 둘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의 현대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정 회장은 일생으로 증명한 인간의 위대함을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세간의 평가가 어떠하든 정주영 회장의 정신과 자세, 행동력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대한민국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정주영 회장의 정신적 유산을 올곧이 물려받아 소화할 수 있다면 그가 바라던 하나된 대한민국, 세계에 멋진 날개를 드높이 펼쳐 보이는 나라도 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꿈꾸던 미래가 생명력을 품고 우리 앞에 펼쳐진 것처럼 말이다.













    더보기
    좋아요
    댓글 2
    • 누군가에 대한 평전은 읽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주영 회장에 대한 서평이 참 새롭게 느껴집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신용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뼈를 맞고 갑니다...
    • 서평의 엄청난 정성에 감동했네요. 사실 정주영 회장님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적어도 한 영역에서 충분한 성공을 거두신 분인 만큼 그분의 말씀 또한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가장 인상깊은 영역은 부지런함인것 같아요. 제가 부지런하지 않아서 더욱 가슴에 찔린 걸까요.. 서평을 읽어보니 저도 부지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