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노볼 드라이브(오늘의 젊은 작가 31)(양장본 HardCover) 작가 조예은 출판 민음사 Sn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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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눈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는 것은 뭘까? 나는 첫눈의 설렘, 차갑지만 거기서 오는 포근함, 눈사람과 눈싸움 등이 떠오른다. 차를 가지게 되면 출근길의 불편함, 미끄러움 등이 떠오를 것이고, 군대에 가면 소위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나오는 눈은 진짜 눈이 아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닿으면 따갑고 건조한, 많이 맞으면 생명에 지장까지 줄 수 있는 그런 물질이다. 눈에 대한 나의 이미지 중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작가는 소설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물질로 '눈'을 선택했을까? 그래서 눈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고, 비와 다르게 가시적이다.
    이 가시적이라는 속성은 눈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소설에서 기득권들은 이 하얀 눈 속에 사회에서 보기 싫은 모든 것들을 묻어버린다. 죽은 동물의 시체, 그리고 묻어줄 사람 없는 힘없는 사람들의 시체... 힘든 시국에서 사람들의 이기심이 보여지는 한 단면이다. 문득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라는 시가 생각나서 인용해보고자 한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쬐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이 시는 독재정권이 모든 것을 묻어버리려 하고, 그것을 피해 모든 생명들보고 피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에서의 눈과 굉장히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녹지 않는 눈'은 '영구적인 보존', 그리고 이상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월의 새엄마는 죽으면 눈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본인의 많은 것을 할애했던 본인의 학교, 그것도 본인이 가장 아끼는 장소인 후정에 묻힌다. 본인이 가장 빛나던 순간에서 썩지 않고 영구적으로 그곳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책 제목에도 있는, 중요한 소재인 '스노볼' 역시 마찬가지다. 스노볼 안의 세상은 항상 눈이 내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적인 세계이다. 이 세계는 영구히 보존된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예기치 못한 비극에서 사람들은 각자 본인의 능력 내에서 살아갈 방법을 택한다. 그렇지만 살아남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 속에 이상향을 가지고, 즉 살아갈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계속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 목표가 끝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믿고 나아가자. 라고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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