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작가 밀란 쿤데라 출판 민음사 책토끼 님의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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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20대때부터 갖고 있던 이 책은 오래전부터 빛바랜 채 우리집 책장에 꽂혀있었다. 호기심에 책장을 뒤적거리던 어린 시절, 책의 근사한 제목은 단번에 내 눈길을 끌었다. 중학생 때 용기를 내어 읽어보려다가 쉽지않은 문장들에 당황해서 몇 장을 읽고 덮었다. 수년이 흐르고 대학에 들어와서 다시 읽게된 '참.존.가'는 여전히 난해했으며 뒤죽박죽인 시간 구성 때문에 종종 갈피를 못 잡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쏟아지는 작가의 사변 속에서 사랑, 성, 신념, 혁명 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책에서 인생의 중요한 두 축인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서 집요한 통찰을 보여준다. 체코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라는 남녀 주인공들의 삶의 행적을 그리는데, 그들은 모두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속성 사이에서 선택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작가가 인물을 만들고 이야기에 풀어놓는 방식이 인상깊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확고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는 치밀한 묘사를 통해 그들을 낱낱이 해부해 보여준다. 인물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부터 중요한 선택까지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성장배경, 신념, 성격 등 모든 근거를 동원해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 tmi의 파티다..) 흔히 너무 설명적이면 상상의 여지가 없어 지루할수가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의 내면세계에 끝까지 파고들어 그 사람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 토마스조차도 (그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테레사와 결혼한 이후에도 다른 여자들과 밀회를 이어나간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논리적인 설명에 이끌려 반쯤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한 선택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한 선택들은 무거움과 가벼움 중 어떤 것을 따른 결과였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무거움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도 무거움을 대표하는 인물인 테레사에 많이 이입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거운 것이 흔히 그렇듯, 테레사는 자신의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점점 추락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고, 토마스라는 굴레로부터 그녀를 놓아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테레사의 진지함이 좋았다. 모든 아픔을 스스로 짊어질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랑에 있어서는 자유롭고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가벼움보다는 무거움이 더 걸맞다고 생각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 같은 책이다. 리뷰에는 애정관계를 중점으로 서술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방대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지탱하는 세계와 관계맺고 있는 존재들의 무게가 궁금할 때,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고민이 들 때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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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인의 인물을 그들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서술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그들이 가진 자의식도 남달라 읽는 내내 충격적이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저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아,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4인 중 나는 누구와 가장 가까울까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무게. 말씀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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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란 쿤데라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책토끼님의 리뷰를 읽으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모든 사람의 선택과 행동이 이해 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작가가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인간의 복잡성과 입체성을 잘 드러낸 책인 것 같네요. 또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의 선택이라니,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서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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